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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18]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존재 증명한 송국리 銅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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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동검, 부여 송국리 석관묘, 국립중앙박물관, 길이 33.4㎝.


1974년 4월 19일. 김영배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장은 공주사대 안승주 교수와 함께 부여로 향했다. 3년 전 공주 남산리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일했던 최영보씨가 도굴 위험이 있는 옛 무덤을 발견했으니 급히 와달라고 연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최씨가 안내한 곳엔 돌판을 조립해 만든 무덤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파괴된 고분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표토를 벗겨 내자 곧 길이가 2.6m나 되는 석관묘의 뚜껑돌 윤곽이 드러났다. 마을 주민 20여명과 함께 뚜껑돌을 들어 올렸다.

무덤 속에 쪼그려 앉아 꽃삽으로 연방 흙과 돌을 제거하던 김 분관장은 마침내 한 무더기의 돌화살촉과 함께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특별한' 동검을 발견했다. 그는 차분하게 발굴을 계속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모두 환호의 탄성을 터트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 발굴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선 마제 석검도 출토됐다. 훗날 김 분관장은 "마치 무령왕릉 입구를 열었을 때 느꼈던 그 경이와 흥분이 재현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10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을 공개했다. 한병삼 고고과장은 "마제 석검이 세형동검을 모방했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은 근거가 없어졌으며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설명했고, 주요 언론에는 '선사고고학 최대 발견'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증' '60년 만에 무릎 꿇린 일본 학설' 등으로 대서특필됐다.

주민 신고로 우연히 발굴된 동검 한 자루가 한국 고고학계가 품고 있던 고민을 일소했고, 국가사적 '부여 송국리유적'을 찾아내는 실마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기원 및 성격을 해명하는 신호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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