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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저출산에 122조 썼지만..."출산 강요해 효과 적어, 삶의 질과 성 평등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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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 토론회 열고 정책 방향 논의

전문가들 "정부가 들인 노력보다 대책 효과 적어"

'인구 증가=경제 발전' 시각부터 바꾸라고 지적

"개인 선택 최우선, 출산율 목표 1.5명 폐기해야"

복지 사각지대 해소, 다양한 가족 인정 등 요청

"복지 폭 넓게 잡고 새로운 남녀 성 역할 필요"

중앙일보

저출산 대책에 100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갔지만 '출산 강요' 분위기에 효과를 기대만큼 거두지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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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에 100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갔지만, 국가를 내세우며 출산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출산 해소의 목표를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 발전, 인구 유지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삶의 질, 성 평등을 향상시켜 출산하기 좋은 여건을 마련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새로운 저출산 대책의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정부가 들인 노력에 비해 정책의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종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기존 1·2차 기본계획(2016~2015)에 현재까지 집행된 3차 계획(2016~2020)을 합쳐 저출산 분야에만 122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특히 저출산 대책 예산은 2006년 2조1000억원 규모였지만 2020년에는 22조4000억원으로 10배를 훌쩍 넘긴다.

박 연구위원은 "저출산·고령화 예산 3분의 1은 무상보육, 3분의 1은 기초연금에 들어가고 있고 나머지 3분의 1로 200여 개의 과제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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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전문가들은 저출산 해소를 위해선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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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저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금까지는 인구 규모가 곧 국가 발전이자 경제 발전이라는 1960~70년대식 '발전주의 모델'이 짙게 깔렸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정부가 국민에게 강압적으로 비치는 방식으로 저출산 문제를 다루고 대책을 마련해 왔다. 과거 출산 억제 정책과 현재 출산 장려 정책을 비교하면 방향만 정반대지 전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저출산 해소를 위해선 개인의 선택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성 평등과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면서 개인의 삶의 질, 행복 수준을 끌어올려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면 각 가정이 자발적으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며 "현재의 기본계획을 재구성하고 제3차 저출산 대책의 목표인 출산율 1.5명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출산율 1.5명이라는 목표 자체가 여성에게는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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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아이와 함께 옷을 고르고 있다. 앞으로 젊은 세대가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복지 사각지대 해소, 성 평등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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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새 정부에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 성 평등 강화, 비혼모 같은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인정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했다. 정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이 15~20% 수준인 국가는 1.5명 이상의 출산율을 보인다"며 "한국은 10%에 불과해 복지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최장 노동시간은 여성의 '독박 육아'를 부추기고 여성의 불안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곧 출산을 포기하게 한다.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가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저출산도 야기한다"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122조원을 투자했지만, 저출산과 관계없는 예산이 상당히 들어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포용과 지지가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최슬기 KDI 국제대학원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산 해소를 위해선 저소득층뿐 아니라 최상위층을 제외한 고소득 전문직까지 복지의 폭을 넓게 잡아야 한다"며 "저출산은 여성의 지위가 남성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남녀 성 역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의 정책이 출산율을 끌어올리진 못해도 최소한 저하하진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정책이 기혼 여성의 출산율 제고라는 목표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패러다임 전환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세부 사업이나 설계, 집행의 연속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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