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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옛 선비처럼… 매화 향에 빠진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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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기술 연구 피재호 교수

200년 넘은 매화 전국에 67주, 후계목 만들어 유전자 연관성 분석

공기중 향분자 포집 방법 동원, 홍매 제품 개발… 녹악매 곧 상품화

동아일보

피재호 단국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조상들이 즐겼던 매화의 자태와 향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오래된 매화나무의 유전자원을 수집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창 너머로 멀리 퍼지던 매화 향을 재현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매화는 조상들이 가까이 두고 멋과 향을 즐긴 나무입니다. 전통의 맥이 끊기는 게 안타까워 현대 사회에 맞게 매화문화를 즐기는 방법을 고민하다 매화 향을 만들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흘러 들어오던 매화 향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1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매화에 푹 빠진 피재호 단국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전공인 식물유전학을 살려 전국에 있는 매화나무의 분포를 파악하고 수령이 오래돼 보존 가치가 있는 매화 자원을 수집해 보유하고 있다.

피 교수가 매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경북 안동 선산에 묘목상의 추천으로 매실이 열리는 나무 1000주를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1000주나 심었지만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묘목상조차 일본에서 들여온 푸른 매실이 열리는 나무라고만 설명했다. 그때부터 피 교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매화 자원을 조사하고 나섰다.

“강릉 오죽헌에 가면 사임당과 율곡이 가꿨다는 ‘율곡매’가 있습니다. 1400년대에 심어 수령 600년이 넘은 나무예요. 이 나무는 2007년에야 천연기념물(제484호)로 지정됐어요.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아직 존재조차 잘 모르지만 보존 가치가 있는 매화는 훨씬 많습니다.”

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600년 넘게 살아온 매화는 4주 있다. 200년 이상은 67주, 100년은 150여 주가 있다. 피 교수는 접붙이기 방식으로 유전자가 똑같은 쌍둥이 나무(후계목)를 만들어 매화 자원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매화의 유전자 계통을 분석하며 상호간의 관련성을 찾고 또 후계목을 분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매화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실되거나 매화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경우 나무 자원을 보관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후계목을 만들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뉴턴 사과나무의 후계목을 세계 곳곳으로 보내 영국의 과학문화를 전파한다.

피 교수는 매화를 즐기는 문화를 대중화하기 위해 매화 향까지 만들었다. 조상들이 즐겼던 것처럼 창문을 열면 흘러 들어오는 자연 매화 향을 재현하기 위해 공기 중의 향 분자를 포집하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백매와 꽃받침이 녹색인 녹악매(청매), 짙은 붉은색 매화인 홍매(흑매) 향이 어떻게 다른지도 화학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

“현재 제작한 매화 향은 홍매향으로 탄산음료가 톡 쏘는 것처럼 시원한 향입니다. 하지만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것은 녹악매 향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녹색을 보여줘 선비들이 좋아했던 매화지요. 첫인상이 강한 홍매와 달리 녹악매는 은은한 향이 오래가는 향입니다.”

녹악매 향 역시 이미 분석은 완료됐다. 2018년에 녹악매에 먹 향을 추가한 ‘선비향’을 내놓을 계획이다. 피 교수는 “현대인도 옛 선비처럼 매화의 자태와 향을 보다 쉽게 즐길 수 있기를 고대하며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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