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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제 좋아졌다는데 냉기 여전한 이유... “변동성 확 줄어든데다 고용 증가는 뒷걸음질쳤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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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현재 경제 지표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3.5%에 육박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 하지만 현재 호경기에 진입했는지 여부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있는데다 경기변동성이 축소된 것이 주원인이다. 12월초 부산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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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1월말 6년 5개월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가 살아나 호경기에 진입했다는 대표적인 신호다. 불황기 풀었던 돈줄을 다시 죄어 인플레이션, 자산가격 앙등(昻騰) 등 호경기에 나타나는 문제를 막겠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한국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반응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반도체 독주론’이 제기될 정도로 IT,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과 나머지 제조업과 온도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 및 가계발(發) 수요 압력은 여전히 낮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임금, 고용 등을 봤을 때 딱히 수요측면의 압력을 찾기 어렵다”며 “한은의 금리인상은 거시경제 측면에서 볼 때 이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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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제성장률이 3% 초중반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수요 압력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변동성이 확연히 감소했다는 점이다. 경기 변동성이 감소하면 불황기에 경기 하강 속도가 느려지지만 지금같은 회복기에도 경기 상승 속도가 느려진다. 생산성 정체, 인구 고령화 등 중장기적 성장률 하락 압력이 두드러지면서 경제에 계속 냉기가 감도는 현상이 지속된다.

두 번째는 수요 회복의 열쇠인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이다.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는 데다 건설업, 서비스업 등에서도 그간 고용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설비투자나 수출은 큰 폭으로 뛰지만 그 과실이 가계나 나머지 산업으로 배분되는 경로는 이전보다 더 막혀있는 형국이다.

◆2014년 이후 ‘박스권’ 갇힌 경제성장률

지난 5일 한은이 발간한 ‘조사통계월보 10월호’에 실린 ‘실물·금융 정보를 활용한 경기상황지수(BOK-COIN) 시산’ 논문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단기변동 요인을 제외한 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중후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논문을 작성한 이동진 한은 전망모형팀 차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에 따른 성장률 변동 폭이 크게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이 차장 등은 정부 재정 투입시기 조정 등 주기 1년 미만인 단기 변동 요인을 제거한 경제성장률을 추산했다. 여기서 한은이 추산한 성장률은 통상 HP필터(호들리-프레스콧 필터) 등을 사용해 얻어진 장기 추세 값과 달리 경기 순환까지 반영된 것이 특징이다.

이 차장 등은 여기에 장기 추세를 제거한 값을 별도로 냈다. 장기 추세를 제거한 값이 플러스를 기록하면 호경기, 반대로 마이너스면 불경기를 의미한다. 추산 결과 2016년 2분기 이후 장기추세를 제거한 값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 절대치는 0.2%포인트 이하다. 4분기(1년)를 합산할 경우 그 수준은 1%포인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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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7월 보고서에서 최근 경기변동성이 다른 나라보다 큰 폭으로 축소된 이유로 산업 노쇠화로 인한 생산성 정체와 미래를 비관한 가계의 소비성향 감소를 꼽았다. /한국은행



이 같은 결과는 한은 조사통계월보 7월호에 게재된 ‘경기변동성 축소에 대한 재평가’ 논문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논문에서 한은은 2010년부터 2017년 1분기까지 경기변동성이 2000~2007년까지 경기변동성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GDP 성장률 변동을 단순 비교하면 50% 정도로 줄었고, 단기 등락 요인을 제거한 GDP순환변동 기준으로는 42%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다른 선진국보다 경기 변동 축소폭이 더 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변동성을 위기 이전 수준과 비교할 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0.9배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0.48배 수준에 불과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경기변동성 축소가 가파른 잠재성장률 하락과 맞물릴 때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의 진폭이 줄어드는 것과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이 맞물릴 경우, 실제 경기는 확장기지만 예전과 비교해 체감하는 경기 수준은 ‘확장기’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이러한 문제를 너무 의식할 경우 실제 경기는 충분히 좋아졌지만, ‘아직도 불경기’라는 해석이 나올 위험도 존재한다. “결국 지금과 같이 경기가 변곡점에 서 있을 경우 그 판단에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제조업 쇠퇴·서비스업 고용 감소·건설경기 위축에 내년도 노동시장 꽁꽁 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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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들어 전산업생산은 늘어나고 있지만 고용은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다. /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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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고용 시장이 여러 원인으로 꽁꽁 얼어붙을 것이란 점도 엇갈리는 경기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30~40대의 제조업 일자리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음식숙박업을 중심으로 서비스업 고용 증가가 대폭 꺾였고, 건설경기도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원은 지난 5일 발표한 ‘2017년 노동시장평가와 2018년 고용전망'에서 내년 취업자수 증가 규모는 29만6000명으로 올해 전망치(32만4000명)보다 2만8000명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고용률은 60.7%에서 61.0%로 소폭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연구원은 취업자수 감소 주요 원인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것을 꼽았지만, 실제 내역을 뜯어보면 경제 전체의 ‘고용 능력’이 확 떨어졌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먼저 제조업의 경우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 고용은 감소 일로다. 조선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다. 대신 50대 이상 중고령층의 제조업 취업자는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업은 올해 1~10월 취업자수 증가(23만2000명)가 전년 동기(34만1000명)의 68.0%에 불과하다. 노동연구원은 “그 동안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를 이끌 던 숙박 및 음식업의 취업자 증가폭이 둔화추세에 접어들었고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는 취업자수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정점을 찍은 건설업 고용은 앞으로도 계속 둔화할 것이라는 게 노동연구원의 전망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여전히 노동 시장 여건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7일 한은이 발간한 ‘노동 수요·공급 지수로 본 노동시장’ 보고서에 노동공급 및 경제활동참가율을 모두 감안해 조정한 실업률은 2016년말 현재 4.9%에 달한다. 2017년에 획기적인 규모의 취업자수 증가 및 실업률 감소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용 시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동결 소수의견을 낸 조동철 위원이 “수출이나 투자로 온기가 돌고 있으나 여전히 경제 전반은 냉기가 감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족한 일자리 탓에 노동 시장에서는 계속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다. 지지부진한 고용 상황이 일종의 ‘디플레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성장률과 달리 한국 경제가 호경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저성장 국면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잠재성장률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실제 경기가 어디쯤 와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성장률 뿐만 아니라 수요압력의 강도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시장에서 고용이 증가하고, 임금이 상승한 결과 가계 소득이 높아지면 수요 압력이 커진다. 결국 물가상승률 자체가 경기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이유다. “여전히 낮은 수준인 근원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경제가 아직 회복궤도에 오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성 교수의 진단이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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