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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 (화)

[리셋 코리아] 정권이 진영 프레임에서 뛰쳐나와야 경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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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제안

미국·중국 기술기업 급성장할 때

국내 업체는 우물 안 개구리 전락

과잉정치가 경제생태계 망가뜨려

대기업·벤처 하나의 생태계 되고

지대 추구와 담합구조 깨부숴야

자본 흐름 되살아나고 인재 몰려

무너진 경제 생태계 복원하려면

1999년 2월 전직 영어교사 출신인 마윈(馬雲)은 66㎡(약 20평) 아파트에서 동료 17명과 함께 전자상거래 회사를 차렸다. 이렇게 초라하게 출발한 알리바바는 20년도 안 돼 세계적 전자상거래 기업이 됐다. 지난달 11일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 당일 올린 매출액 28조원은 한국의 연간 전자상거래 매출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영어는 물론 세계 16개 외국어를 서비스하면서 영업 대상은 만리장성을 넘고 있다. 알리바바의 해외 이용자는 올 7월 1억 명을 돌파했다.

반면에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부하면서 중국보다 먼저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한 한국에는 알리바바는 물론 아마존 같은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이 없다. 전자상거래 업체가 20개 안팎에 달하지만 모두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더구나 중국인이 찾지 않으면 매출이 늘어나기 어려운 천수답 처지에 빠져 있다.

왜 이런 참담한 결과가 빚어졌을까.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인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한국의 경제 생태계’ 진단을 통해 그 원인을 짚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식물을 원천으로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먹이사슬을 이루고, 곰팡이·박테리아가 분해자 역할을 하는 자연 생태계처럼 경제 문제를 얽어매고 있는 정치·사회 구조를 함께 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경제 생태계를 연구해 온 김정식(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 연세대 교수와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가 함께 토론에 참여했다.

중앙일보

무너진 경제 생태계 복원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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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우선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하나로 돌아가는 기업생태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기술기업이 미국·중국에서 무더기로 나오고 한국에선 나오지 못하는 것은 역대 정부가 말로만 혁신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규제로 기존 기업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고 있는 탓이라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김동원 교수는 “그 결과 기존 기업은 진화하지 못하고, 전체 기업의 16%에 달하는 좀비기업은 공적자금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다”며 “기업 생태계를 복구하려면 기업 규모별 칸막이가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과 일자리 막혀 가계부채 증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에선 기업의 생성-성장-소멸-재생성의 순환체계가 망가지고 있다. 기업 성장 과정에서 내부에서 키우기도 하고 외부에서 인수합병(M&A)도 해야 하지만 한국에선 M&A가 작동하지 않는다.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지식재산권(IP)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관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경영해 온 결과 대기업 의존도가 높고 대기업은 가격을 후려치는 데 익숙하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는 관행이 자리 잡기 어렵다. 제값을 받지 못하자 차라리 중국 기업에 기술을 팔겠다는 스타트업도 나오고 있다. 국내 경제 생태계가 무너진 틈을 비집고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는 강영재 KSP 공동대표는 “대기업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규제를 풀어주는 동시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해 지식재산권이 제값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생태계의 붕괴는 국가·기업·가계의 부채 폭탄 돌리기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식 교수는 “한국은 수출에서 소득이 생기고 그걸 내수에서 쓰며 일자리가 생기는 구조인데, 그런 선순환 구조가 막히면서 부채만 늘고 있다”며 “외환위기 전에는 그 부실을 기업이 떠안았고, 지금은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데 앞으론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를 해소하려면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그 원동력은 혁신성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잉정치와 이념화, 담합구조의 덫에 빠지면서 한국의 경제 생태계는 자생적인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우철 시립대 교수는 “경제학에서 보면 결국 좋은 생태계는 누구나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고 경쟁에서 적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완전경쟁 생태계”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산업환경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규제프리존특별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조속히 도입해야 하지만 정쟁의 희생물이 되면서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김 교수는 “이런 경제활성화법에서 논란이 있는 부분은 일단 제외하고 나머지 서비스업이라도 신속히 처리해야 자본이 새로운 산업에 흘러가고 일자리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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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코리아 경제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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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정치와 이념화 원인 제거해야

자본의 흐름이 막히면서 한국은 성장률 3% 달성도 힘겨워하고,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다. 취업준비생과 공시생을 포함하면 실질 실업률은 24%에 달하는 것이 한국 경제 생태계의 단면이다. 이는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니계수, 소득 5분위 배율, 중산층 비중,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악화했다. 김진영 고려대 교수는 “결국 경제가 정치적 행위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라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노사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식 교수는 “노동자만 자꾸 탓해서 임금을 높게 받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없애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푸는 방법은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김우철 교수는 “대기업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임금도 오를 수 있다”면서 “선진국 중소기업들처럼 한 기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거래처를 만들어야 독자적 생존기반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 역시 “수많은 정책자금이 중복 지원되고 있는데 수출 중소기업에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취약한 산업생태계도 복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관료·재벌 사이에 형성된 담합구조를 깨고 초과이익을 얻으려는 지대 추구 행위도 끊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특히 정치권과 대기업 노조의 지대 추구 행위가 문제”라며 “결국 시스템을 통해 기득권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경제 생태계 복원은 기득권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 경제를 살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처럼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결국 집권세력이 진영의 프레임에서 뛰쳐나와 과감하게 노동개혁과 규제 혁파에 나서라는 주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아현 인턴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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