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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심진용 기자, 이스라엘을 가다] (2)아랍 분열 허 찌른 트럼프…“우린 선택 기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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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임시 수도 ‘라말라’

팔 시민 “싸우면 죽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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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임시 수도 라말라는 동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북쪽으로 15㎞ 남짓한 거리에 있다. 9일(현지시간) 오전 높이 솟은 분리장벽을 지나 칼란디아 검문소를 넘었다.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는 길은 누구 하나 막아서지 않았다. 하지만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반대편 차로는 달랐다. 2차선 좁은 도로로 검문을 기다리는 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섰다.

경향신문

요르단강 서안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라말라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몰래 숨어드는 사람이 없는지 매일 검문소를 지키고 막는다.

라말라의 10대 소년들은 검문소를 향해 돌을 던진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다. 1987년과 2000년, 두 차례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 때도 10대 남자아이들이 맨 앞에 나섰다.

오전 10시, 10여명의 아이들이 검문소 앞 도로를 서성이고 있었다. 모두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 최루탄이 떨어지면 스카프를 올려 코를 막는다. 길가 주유소 앞에서 만난 야밀(17·가명)도 전날 이곳에 나와 “마을을 구하기 위해” 돌을 던졌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문소 주변 도로바닥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경찰과 군인의 눈을 피하려고 타이어를 태운 흔적이다.

그래도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 비하면 라말라 등 서안지역 도시들은 안전하다. 시내 중심 번화가 루캅에서는 활기까지 느껴졌다. 거리는 젊은이들로 붐비고, 양편으로 카페와 상점이 빽빽했다. 벤츠·BMW 같은 고급차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하지만 번화가 상점들은 정부지원금 없이 버티기 힘들고, 그 지원금은 해외원조 없이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은 2015년 한 해에만 24억달러(2조6200억원)를 받았다. 미국에서만 4억달러를 냈다. 미 정부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해도 팔레스타인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루캅 거리 커피숍에서 만난 칼리드 나집은 “팔레스타인은 기로에 섰다”면서 “미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빨리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집은 유엔개발계획(UNDP)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8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미국 아닌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기대한다. 나집은 인터뷰 직전까지도 유럽연합(EU) 관계자들과 현재 상황에 대해 회의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유엔 회원 193개국 중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137개국 각각에 캠페인을 벌이고 지지를 얻어 국제적 압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가장 큰 우방이었던 아랍권에서도 규탄성명 이상의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범아랍주의를 외치던 시대는 끝났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아랍 각국은 분열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더 이상 그들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나집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벽한 타이밍’에 찌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나집과 함께 차를 타고 라말라 북쪽 끝, 유대인 정착촌 중 한 곳인 벧엘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DCO검문소 인근으로 갔다.

라말라에서 두번째로 큰 쇼핑몰 브라보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눈이 따가워졌다. 검문소에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쏜 최루탄 냄새가 1㎞ 떨어진 쇼핑몰 안쪽까지 스며든 것이다.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라시드(38·가명)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4세와 5세 두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아침에 만났던 야밀의 이야기를 전했다. 라시드는 “나가서 싸우면 죽을 수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먹고살 길이 없어 죽는다”고 말했다. 자동차 거래상인 라시드는 이스라엘의 심한 국경 통제 탓에 차를 들여오는 것도 파는 것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에 따로 세금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기 자식들이 커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거라면 말리지 않겠다고 한다.

라말라도 겨울이다. 오후 5시면 해가 진다. 쇼핑몰을 나오니 사방이 컴컴하다. 멀리서 아직까지 타이어를 태우고 검문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 구급차와 구호요원들을 지나 아이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한 손으로 돌팔매를 휘휘 돌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길바닥 위로 아이들 머리보다 훨씬 큰 돌덩어리가 굴러다녔다.

하마스가 ‘분노의 날’을 선언한 지 사흘째, 라말라를 비롯해 서안 20여곳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동예루살렘 올드시티 지역에서는 시위대 13명이 이스라엘 기마경찰에 체포됐다.

가자지구에서는 이날까지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날 시위 도중 2명이 이스라엘 군경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다른 2명은 하마스 대원으로 이스라엘군의 보복타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사망자가 나오기는 2014년 7~8월 하마스와 ‘50일 전쟁’ 이후 3년 만이다. 이날까지 부상자는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서 1000명 이상 발생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칼란디아 검문소로 향했다. 아침에 차로 반대편에서 봤던 것처럼 차들은 끝도 없이 밀려 서 있었다. 막막한 팔레스타인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았다.

<라말라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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