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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美 클린턴 정부, 北과 전쟁 승리 확신했지만, 한국군 50만명 사상 우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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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가안보문서보관소, 정부 기밀문서 공개

"1994년 북한과의 전쟁 계획했지만, 미군 5만여명, 한국군 49만명 사상 추산"

"기근 때문에 北 정권 무너질까 심각한 우려도"

조선일보

/국가안보문서보관소 홈페이지 캡처


20여년 전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실제로 계획했고 승리도 확신했지만,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선제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밀 해제된 문건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

미군 기관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 등은 8일(현지시각) 미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가안보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가 기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를 분석해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성조지는 “최근 북한의 잇따른 핵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20여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3개월간 주한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명이 숨지거나 다칠 것으로 예상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대북 특사를 지낸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은 1998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전쟁 계획을 세웠었다”고 말했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북핵 시설을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도 고려했었다.

윌리엄 페리 전 장관은 “한국군과 미군의 전력을 합치면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전쟁의 부정적 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내용은 주한 미국 대사관이 청와대에서 받은 대화록을 바탕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한 문건에 담겨 있다.

조선일보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무기통제협회(ACA)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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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문서보관소는 이후 클린턴 정부가 대북 정책을 구상할 때 군사 공격에 대한 논의는 점차 줄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의 전쟁 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검토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페리 전 장관이 최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과의 전면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며, 세계 1·2차 대전과 비슷한 규모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전쟁을 하는 것에 대해선 거리를 두면서도 북한에 핵과 미사일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6월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 보고에 따르면 그해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페리 전 장관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고 한국·일본을 위협하는 북한 장거리 미사일은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라며, “핵 프로그램이 계속 강행될 경우 북미 관계에 ‘심각하고 부정적인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핵 합의(제네바 합의)가 북한 강경파의 득세로 파기되지 않을까 염려한 대목도 확인됐다. 주한 미 대사관의 1998년 4월 국무부 보고를 보면 미국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방미를 두 달 앞두고 이런 우려와 함께 파기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토머스 피커링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한이 우리가 약속을 저버릴 것이라고 느끼면, 그들도 우리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명분을 찾을 것”이라며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가 보이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체제가 기근으로 붕괴될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1997년과 1998년 작성된 미 국무부 자료에는 북한에서 많은 주민이 기근으로 숨지는 것에 대해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유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미 당국은 4자 회담 접근법은 북한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개혁부터 북한 정권 붕괴까지 여러 가능성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안보문서보관소는 이번 문서 분석을 통해 클린턴 행정부가 한반도 안보 문제를 빠르고 쉽게 해결하려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송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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