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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영화와 드라마, 경계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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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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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이 드라마를 찍으면 '외유(外遊)한다' '외도(外道)한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본국(영화)은 제쳐두고 외국(드라마)으로 여행간다' '배우자(영화) 생각은 안 하고 한눈판다'는 소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싯적 얘기일 뿐. 국내외 감독들이 최근 앞다퉈 TV 시리즈 연출·제작의 길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와 드라마를 예술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양자의 경계는 앞으로도 점점 옅어질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그 분기점을 대체로 2013년으로 잡는다. '조디악'(200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등을 선보인 거장 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그해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넷플릭스 13부작의 닻을 올리고부터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 감독들이 TV 드라마를 찍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나, 이때부터 역류가 가속화됐다"고 했다. 과거엔 TV 드라마를 찍던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가려던 경향이 뚜렷했다면, 이제 정반대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최근 애플 TV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영입해 '어메이징 스토리' 제작 소식을 발표했다. 1985~1987년 NBC에서 방영한 45부작 시리즈를 5000만달러를 들여 부활시킨 것. 넷플릭스 또한 일찌감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기용해 TV 시리즈 '아이리시맨' 제작에 들어갔다. 스코세이지가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와 20여 년 만에 재회하는 작품으로, 의문의 실종과 살인 사건에 연루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밖에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제작을 맡고 스콧 프랭크 감독이 연출키를 쥔 서부극 시리즈 '갓리스' 또한 지난달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다.

경쟁사인 아마존 스튜디오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이 회사는 최근 홍콩 거장 왕가위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작품 선택에 신중하기로 소문난 그를 끌어들여 범죄 시리즈물 '통 위즈'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이 밖에 리들리 스콧부터 파올로 소렌티노, 세라 폴리, 장마크 발레, 숀 레비, 제인 캠피언, 심지어는 TV 자체를 아예 안 본다던 우디 앨런 감독마저 TV 시리즈 제작·연출에 뛰어들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외를 아우른다. 최근 한국 감독들 또한 TV 시리즈 연출 소식을 속속 타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BBC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 연출차 영국에 가 있는 박찬욱 감독이 한 예다. 박 감독이 찍을 이 6부작 시리즈는 존 르 카레가 1983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 비극적 첩보작전과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이다.

지난해 흥행작 '터널'을 선보인 김성훈 감독도 김은희 작가와 함께 최근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김 감독이 이미 촬영에 들어가 있는 TV 시리즈 '킹덤'은 조선 왕세자가 의문의 역병을 조사하던 중 거대한 음모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류승룡, 배두나, 주지훈 등 한국 주요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문가들은 영화 감독들의 드라마 제작 참여를 반기는 분위기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 제작에서 다뤄지기 힘든 자신의 작가적 색깔을 드라마에서 충분히 발현 가능해졌다"며 "TV 시리즈 진출을 감독들이 망설일 이유가 더는 없다"고 했다.

황재현 CJ CGV 커뮤니케이션팀 팀장 또한 "이전에 드라마로 구현하기 힘든 영화적 기법들이 기술 발전으로 실현 가능해진 시대"라며 "이제 시청자들도 영화와 드라마를 크게 구별하지 않기에 이 같은 움직임은 향후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시균 기자 /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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