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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깜깜해도 출항 가능…낚싯배 안전규정 全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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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5명의 사망자를 낸 인천 영흥도 해상 낚싯배 전복사고 실종자 수색 작업이 마무리된 가운데 낚싯배 규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수천 대에 달하는 낚싯배들이 어둠 속에서 자리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일원화된 안전운항 규정이 없어 바다 위의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낚시 인구가 700만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낚시가 전 국민적 레저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안전대책과 안전의식이 미비하다는 설명이다.

5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선창1호 선장 오 모씨는 이날 오전 9시 37분께 인천 영흥도 용담해수욕장 남쪽 갯벌에서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채 누워 숨진 상태에서 발견됐다. 이는 사고 발생 이틀만으로 오씨가 발견된 곳은 추돌 사고 지점에서 남서방 2.7~3㎞ 떨어진 곳이다.

오씨와 가깝게 지냈던 영흥도의 한 주민은 "올해 한 철만 (남의 배를) 더 타고 자기 배를 탄다고 했는데 황망하게 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주민은 "충남 한 조선소에서 오씨 배를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이 시작된 상황인데 오씨도 바빠서 자기 배를 보지 못했다"며 "6억원에 달하는 배 한 척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한 억척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 실종자였던 낚시객 이 모씨도 이날 낮 12시 5분께 사고 지점에서 남서방 2.6㎞ 떨어진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일대를 수색하던 해경 헬기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고 있었으며 영흥도 진두항에 나와 있던 이씨 아내가 육안으로 남편임을 확인했다. 오씨는 시흥 시화병원에, 이씨는 인천 부평세림병원에 안치됐다. 실종자 2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됨에 따라 지난 3일 영흥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낚시어선과 급유선 추돌 사고 최종 사망자는 15명으로 늘었다.

전방주시 의무를 지키지 않은 급유선도 문제지만 낚싯배도 이번 참사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지적된다. 4500여 대(지난해 등록 기준)에 달하는 낚싯배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포인트'를 찾기 위해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은 무시되기 일쑤며 가벼운 접촉사고쯤은 선장끼리 합의하에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낚싯배 안전운항에 대한 일원화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역항 28곳과 인천·부산·울산·포항·여수 내 대형 항구의 선박이 시속 5~20노트 속력제한 규제를 받는 것과 달리 사고 발생 지점인 영흥도 인근 해역을 비롯해 소형 항구에선 속력제한 규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지역 해경이 자체 판단에 따라 저속 운항을 유도하는 계도 활동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낚싯배 영업시간 규정도 문제다. 지난 3일 영흥도의 항해박명 시기는 오전 6시 29분에서 오후 6시 17분까지였지만 옹진군 낚싯배 입출항 시각은 11~3월 기준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육안으로 사물의 윤곽은 알아볼 수 있지만 일상적인 야외 생활은 불가능한 때다.

옹진군이 낚싯배 입출항 시각을 이렇게 정할 수 있었던 건 일원화된 낚싯배 안전운항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낚시법 제35조(안전운항 등을 위한 조치)에 따라 관할 경찰서장 또는 해양경찰서장의 의견을 들어 규정을 마련할 수 있지만 해양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이 목소리를 내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낚싯배 안전운항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항해지도교수는 "낚싯배는 좁은 수로나 장애물이 많은 해역을 다니다 보니 어두울 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낚싯배 영업시간을 해가 뜰 무렵과 질 무렵을 기준으로 입출항 일시를 정하면 오인 및 오판으로 인한 해상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낚시 산업 규제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광수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안전운항 규정에 문제가 있으니 깊이 검토해봐야 한다"면서도 "낚시법이 낚시 산업 지원·육성을 위한 법인 만큼 영업시간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법안 취지에 역행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인천지검은 급유선 명진15호 선장 전 모씨(37)와 갑판원 김 모씨(46)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인천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인천 = 지홍구 기자 / 서울 = 임형준 기자 / 성승훈 수습기자 / 윤지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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