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국제 반인도범죄 재판의 ‘북극성’ ICTY, 내달 ‘역사 속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4년 전 ‘유고 전범’ 처벌 위해 세워져 ICC 설립 등에 영향

‘발칸 도살자’ 믈라디치 종신형 마무리…시간·비용 한계도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보스니아계를 학살한 ‘발칸의 도살자’ 3인방을 심판하는 국제 전범재판이 마무리됐다. 재판 중 옥사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 지난해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라도반 카라지치 전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지도자에 이어 세르비아계 군 총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가 22일(현지시간)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다룬 마지막 주요 사건이었다. ICTY는 다음달 문을 닫는다.

ICTY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1993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졌다. 이는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전쟁에서 일어난 반인도적 범죄를 단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차 세계대전 뒤 전승국의 입맛대로 나치 전범을 처벌한 도쿄·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는 달랐다. ICTY의 경험으로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설립하기 위한 로마조약이 채택됐다. 또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1999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2002년), 레바논 특별재판소(2009년) 등 뒤이은 국제전범 재판의 선례가 됐다. 알렉스 화이팅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ICTY는 북극성이었다”고 했다.

재판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회의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빌 클린턴 미국 정부와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의 지지가 보태져 힘이 실렸다. 결정적으로 유럽연합(EU) 가입을 원하는 발칸 국가들이 도피 중인 피고인 송환에 협조해 기소와 심리가 진척됐다. 4500여명의 증언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았다

방청석 99석 규모의 작은 법정에서 지난 24년 동안 155명이 재판을 받았다. 기소자 161명 중 마지막으로 6명이 오는 29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1996년 11월 첫 선고 후 84명에게 유죄가, 19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20명은 공소가 취소되고 17명은 재판에 넘겨졌지만 선고 전 사망했다. 재판소를 거쳐간 재판관만 53개국 89명에 이른다. 한국의 권오곤 ICC 당사국총회 의장도 2001년부터 15년 동안 상임 재판관 및 부소장을 맡았다.

그러나 국제 전범재판은 여전히 이긴 자와 강국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 유고연방만 관할했던 ICTY에 비해 로마조약 가입국 전체를 관할하는 ICC는 제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600개가 넘는 해외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은 로마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문제 국가’와 가까운 중국·러시아도 마찬가지다. ICC에 계류 중인 사건 25건 중 대부분이 아프리카에서 축출된 독재자나 내전·분쟁의 패배자들이다.

전범 재판으로 한 나라의 과거사가 정리되고 분열이 치유될 수는 없다. 보스니아는 여전히 갈라져 있다. 보스니아 내전 희생자들은 이 재판이 책임을 물을 유일한 창구였지만 세르비아계는 ICTY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믈라디치가 종신형을 선고받은 날 보스니아 동부의 세르비아계 거주지역에는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늘 제기되는 문제다. 카라지치는 기소된 지 21년 만에, 믈라디치는 22년 만에 선고가 내려졌다. 믈라디치 재판 동안 증인만 592명, 제출된 증거만 1만건에 달한다. 밀로셰치비는 5년 동안 재판을 받다 옥사해 단죄하지 못했다.

ICTY가 공개한 ‘정의의 비용’을 보면 2015년 기준 최근 3년 동안 연간 9000만~1억2500만달러(약 1000억~1300억원)를 썼다. ICTY 검사를 맡았던 덴버스텀대학 데이비드 애커슨 교수는 유에스월드앤드리포트에 “한 재판당 약 3000만달러가 든다”고 전했다. ICC는 설립 10년 만에 첫 선고가 나왔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