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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그란디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 "로힝야 캠프에서 20년 전 르완다의 고통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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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60)는 지난 8월 미얀마 라카인주와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캠프를 찾았을 때 20년 전을 떠올렸다.

그란디는 2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목격한 가장 극적인 고통과 불행한 죽음을 1990년 르완다 대학살 때 목격했는데 두 달 전 방글라데시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난민을 보면서 20년 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불행히도 그 고통들이 20년 전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지난해 1월 최고대표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이날 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란디는 인생의 절반을 유엔에서 보냈다. 1988년 UNHCR에 몸담은 후 수단, 시리아, 이라크,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DRC),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의 시간을 분쟁과 내전의 현장에 있었다.

그에게 현재 가장 비극적 난민 문제로 꼽히는 로힝야 사태의 해법을 물었다. “이건 오래된 문제다. 핵심은 그들에게 국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 외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귀환이라는 결과에 도달해야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그들이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한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뤄지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끄는 라카인자문위원회의 보고서를 들며 “보고서가 명확하고 실질적 조언을 담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해 9월 수지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라카인자문위는 지난 8월말 최종보고서를 내고 로힝야의 국적을 박탈한 국적법을 재검토해 귀화를 통해 국적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 등을 권고했다. 이를 얼마나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는 미얀마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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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디는 지난 2일 유엔 안보리에서 연설하며 “유엔 안보리와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난민 문제를 낳은 분쟁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평화와 안전을 찾는 일이 안보리의 일인데 그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만 답한다. 그러면 나는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에서 일하는 구호활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은 쉬울 것 같냐고 말하고 싶다. 활동가들이 일하는 이유는 분쟁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찾지 못한 결과다. 유엔난민기구가 인도주의 기구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다른 기구도 본연의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그는 2년 전 유럽의 시리아 난민 사태를 예로 들었다. “죽음과 난민과 고통을 말하다가 난민이 여러분의 국가에, 여러분의 영토에 갈 수 있다고 얘기하면 그제야 듣기 시작한다. 2년 전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대거 도착하기 시작하자 난민 위기를 부른 내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해결책을 찾으려 실질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난민이 강처럼 퍼져나갈 때가 되서야 해결책을 찾아서는 안된다. 남수단, 미얀마 위기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고통 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단순히 인도주의적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반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유럽의 민심은 난민 문제와 연관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화는 번영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불안을 가져오기도 했다. 세계화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불안이 큰 것 같다. 이런 사람들에게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설명이 되야 한다”며 “난민 때문에 불안정한 상황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대다수 난민은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많은 나라들은 난민에 점점 더 높은 장벽을 세우고 주변 빈국이나 길목 국가로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호주는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와 나우루 등에 난민 수용소를 지어 격리하다가 파푸아뉴기니 대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문을 닫았다. 수용소는 전기도, 물도 끊겼고 난민들은 갈 곳을 잃었다. 유럽은 터키와 리비아 등 길목 국가에 지원금을 주고 난민 유입을 막았다.

그란디 최고대표는 이런 현상에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 “모든 정부가 자국 국경을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만 누군가의 난민 신청 권리를 막아서는 안된다. 한 국제회의에서 유럽 지도자 중 한 명이 단 한 명의 불법 이주자도 유럽 국경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대다수 난민은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경은 일단 열고 안전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난민을 줄이고 통제하려면 난민이 발생한 지역에서 해법을 찾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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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수장으로 난민 정책의 모델로 꼽는 나라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최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캐나다를 ‘난민 문제의 챔피언’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캐나다 외에 독일도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 때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함께 역할을 해주지 않아 독일이 더 많은 짐을 져야 했다”며 “국내에서 불평등하다는 여론이 조성돼 지금의 정치적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글라데시도 자국의 형편도 좋지 않지만 로힝야 난민을 이렇게 많이 받아들였고 같은 빈국인 우간다도 남수단 난민을 매일 몇천명씩 받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땅을 준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난민정책은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란디는 “나는 점수를 매기는 걸 싫어한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이 전세계 난민을 지원하는 것을 보면 정부와 민간 부문 후원도 늘어나고 있어 높게 평가한다. 한국인 20만명이 유엔난민기구 정기후원을 한다. 유엔난민기구가 전세계에서 운영하는 민간후원팀 중 2번째로 크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자적 난민법을 가진 나라지만 그걸 실제 적용하는 데 있어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난민 심사 제도, 난민신청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시리아 난민에게 난민 지위가 아니라 권리가 제약되는 ‘인도적 체류자’ 자격을 부여하는 문제 등을 거론했다.

그에게 외국인에 배타적 정서가 강한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주문했다. “한국은 혹독한 식민지배, 전쟁, 시민혁명을 경험한 나라다. 한국인들은 박해받거나 탄압받는 고통, 전쟁으로 모든 권리를 빼앗기는 것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유엔의 도움을 생각한다면 국제적 연대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 것이다. 한국은 내전에서 주요20개국(G20)이 되기까지 경제적 성과를 보여준 사례다. 이제 여러분만큼 운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여러분의 차례다(It‘s your turn).”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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