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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하얼빈 의거 지원한 러시아 한인민족운동 대부 최재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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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기념사업회, 고려인 대학생 장학사업·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등 펼쳐

아시아투데이

연해주와 시베리아 항일독립운동 대부 최재형./제공=최재형기념사업회




아시아투데이 전혜원 기자 = 안중근 하얼빈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된 최재형 선생(1860~1920). 그는 연해주와 시베리아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그는 우리에게 철저히 잊혀진 인물로 남아있었다.

노비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1860년대 후반 한반도 북단에 몰아닥친 대기근 당시 가족을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했다. 12살 되던 해인 1871년 너무 배가 고파 가출했다가 선량한 러시아 상선 선장 부부를 만나, 선원의 신분으로 6년 동안 세계를 돌며 국제 정세에 일찍 눈떴다.

그는 러시아 상선 선장 부부의 배려로 문학, 과학 등 근대교육을 받으며 유식한 인텔리 청년으로 성장했다. 러시아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덕분에 라즈돌리노예~연추 간 군사도로 공사 통역을 맡았고, 극동함대사령부 식료품 납품권을 따내면서 당대 최고의 거부가 됐다.

한인들이 집집마다 그의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그에 대한 한인사회의 신망은 매우 높았다. 생활이 어려운 고려인들을 품어준 그는 한인들로부터 ‘페치카’(난로)라 불렸다.

러시아에 귀화한 최재형 선생은 1893년 우리의 군수에 해당하는 도헌에 선출됐다. 그는 도헌이 되자 한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마다 초등학교를 설립했다. 나아가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을 선발해 러시아 대도시로 유학 보냈다. 자신의 도헌 봉급 3000원 전액을 은행에 맡기고 그 이자로 매년 유학생 한 명을 선정해 후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기꺼이 바쳤다. 일제 압박으로 만주에서 연해주로 밀려온 독립군에게 군자금과 러시아 신무기를 제공했다. ‘대동공보’를 발간해 교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도왔다. 이러한 공로로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를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했다.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당하기까지 그의 불꽃같은 인생 60년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최재형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다. 2011년 최재형장학회로 시작된 기념사업회는 2015년 사단법인으로 설립됐다.

최재형 선생의 ‘페치카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재형기념사업회는 고려인 대학생 장학사업과 최재형 기념사업, 자료 발굴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특히 2020년 최재형 순국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펼친다.

그 일환으로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융복합 전문예술단체 랑코리아와 함께 최재형 선생의 삶을 창작뮤지컬로 선보인다.

22~23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뮤지컬 ‘페치카’ 쇼케이스가 열린다. 공연은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 그리고 최재형이라는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 그의 삶을 무대로 불러낸다. 연해주의 거지 소년이었던 그가 독립운동의 대부가 되기까지 숨겨진 내막을 펼쳐낸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연해주 초기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국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며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고택을 정부에서 최재형박물관으로 조성해 내년 상반기 개관 예정이다. 알면 알수록 놀랍고 훌륭한 그의 삶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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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 고택./제공=최재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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