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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 150km 열차 달리는 철로 옆, 액상화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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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영덕 동해선 철도 12월 개통 앞두고 시운전 한창

내진설계로 지진 직접 피해 없었지만 액상화 문제 대두

주민들 "땅 꺼져서 교량 내려앉으면 어쩌나" 불안 호소

전문가 "액상화 현상으로 침하 가능…반드시 점검해야"

[단독]액상화 포항 진앙 옆 150km열차 곧 개통, 지반침하우려
중앙일보

규모 5.4의 지진 발생 7일째인 21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 논에서 액상화 현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뒤로 동해선 철도 포항~영덕 구간을 영업시운전하는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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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들판.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한 농한기 들판 한가운데 어른 키 5배 높이쯤 되는 철제 시추 장비가 서 있었다. '꽝-꽝-' 소리를 반복하는 시추 장비 곁으로 안전모를 쓴 기상청 관계자들이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은 지난 15일 오후 2시29분 규모 5.4 포항 지진이 발생하면서 '액상화(Liquefaction) 현상'이 관측된 들판이다. 볏짚 정리를 끝내고 바짝 말라있던 논바닥에서 느닷없이 물이 솟구친 것이 액상화 현상의 시작이었다.

액상화는 모래로 된 지하 사질층에 진동이 가해졌을 때 지하수와 토양이 섞여 지반이 물처럼 바뀌면서 지표가 연약해지는 현상이다. 땅이 물렁물렁해지고 갯벌처럼 변한다.

기상청과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지난 20일부터 진앙 인근 논밭에서 지반 샘플 채취를 위한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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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 인근 논에 액상화 현상으로 모래 분출구가 형성돼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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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창 시추 작업 중에 한 작업자가 300여m 떨어진 고가철로 위를 가리켰다. 손끝이 가리킨 6m 높이 고가철로 위를 3량짜리 열차 하나가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철로는 망천리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5㎞가량 교량 형태로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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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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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자는 "어떻게 열차가 저렇게 다니고 있었느냐"며 황당해 했다. 고가철로 주변에 액상화 현상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열차가 그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이 열차 안에는 승객이 한 명도 없었다. 시운전 중인 열차여서다. 진앙지인 망천리를 관통하는 이 철로는 포항과 영덕을 잇는 44.1㎞ 구간에 공사중인 동해선 철도다. 다음달 개통을 앞두고 지난 8월 30일부터 시운전을 해왔다. 9월 20일부터는 실제 영업 상황을 가정한 영업시운전을 하면서 최고속력인 시속 150㎞로 포항과 영덕을 오가고 있다.

철도 건설사업을 맡은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15일 지진 발생 직후 영업시운전을 일시 중단했다. 하루 동안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포항~영덕 동해선 철도 전체 구간을 긴급 점검했다. 구간 전체 시설에 내진설계가 돼 있었던 만큼 별다른 피해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시운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지진 이후 흥해읍을 지나는 구간 일대에 액상화 현상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내진설계와 관계 없이 철로를 받치고 있는 교각 자체가 침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열차 운행이 시작되고 철로에 하중이 실릴 경우 침하 현상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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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지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를 관통하는 포항~영덕간 동해선 철도. 21일 오전 열차가 지나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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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액상화 현상은 토양을 둘러싸고 있는 물이 외부 충격에 의해 압력을 받아 솟아오르는 현상인데 시간이 지나면 토양이 저절로 다져지지만 일시적으로 변형이 이뤄질 수 있다. 액상화 현상 때문에 철로가 침하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시설물 안전점검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액상화 현장을 직접 둘러본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고위 관계자도 "액상화 구간을 저속운행 하거나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한 뒤에 철도를 개통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인근 농민 김정구(46·흥해읍 남송리)씨는 "전문가들이 기초 공사를 잘 해놨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액상화 현상 때문에 땅이 푹 꺼져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개통 하기 전에 안전 점검을 확실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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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진앙지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를 관통하는 포항~영덕간 동해선 철도. 액상화 현상이 일어난 들판과 인접해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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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철로를 받치고 있는 교각들이 지하 암반층에 가까운 곳까지 박혀 있고 내진설계도 잘 돼 있어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면서 "지진 직후 실시한 약식 안전 점검과는 별도로 액상화 현상과 관련한 구조물 안전진단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액상화 현상은 진앙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뿐만 아니라 포항시 남구에서도 확인될 정도로 광범위하다.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행정안전부 활성단층조사단인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팀이 지표 파열을 확인하러 왔다가 포항고와 남구 송도동 주택가 등지에서 액상화 흔적을 발견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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