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최강민 “문학권력 비판 10년해왔지만 바뀐 것 없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등단부터 문학권력 비판나선 비주류 평론가

“더 이상 비판 주도할 여력 없다”면서도

네번째 평론집 ‘엘리트 문학의 종언시대’ 펴내

이태동·김지하·양성우 등 신랄한 비판 담아


한겨레

한국 주류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한 평론집 <엘리트 문학의 종언시대>를 낸 평론가 최강민. “문학평론이 살고 한국문학도 살리려면 평론가들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 출판계의 ‘빅3’로 불리는 3개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주류 문단에 비판적인 일군의 평론가들이 있다. 김명인, 권성우, 오길영, 이명원 등이 대표적이다. 빅3 출판사 등 주류 문단에 대해 거리를 두고 그들을 ‘문학권력’이라 비판해 온 이들이 모처럼 담론을 주도하며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게 2015년 표절 논란 당시였다. 그런데 문학권력 비판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평론가 한 사람이 당시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문학 제국>(2009)이라는 첫 평론집에서 빅3 출판사와 김윤식·김주연·정과리 같은 주류 평론가들은 물론 ‘동지’라 할 수 있을 김명인을 향해서도 주례사비평 혐의를 두고 날을 세웠던 최강민(51)이 그다.

“2002년 등단 이후 줄기차게 문학권력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런데 같은 비판을 10년 넘게 하는데도 바뀌는 건 전혀 없더군요. 비판 대상은 끄떡도 않는데 저만 앵무새처럼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거죠. 동어반복이란 듣는 사람도 괴롭겠지만 말하는 쪽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거든요. 결국 문학평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평론 쪽으로 중심을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엘리트 문학의 종언시대>(문화다북스)라는 제목으로 네번째 평론집을 낸 최강민은 무척 지친 모습이었다. 1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문학권력 비판을 주도할 여력이 없다”며 “지금 와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고독한 길’(2014년에 낸 그의 세번째 평론집 제목)을 간 것을 후회한다”고까지 말했다. <…종언시대>의 머리말에서는 청년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조적인 뜻으로 쓰는 속어 ‘이생망’을 들며 “내 삶과 평론도 ‘이생망’이었을까?”라고 회한 어린 자문을 던지기도 했다. 거기에는 박사학위 취득(2000년 2월) 17년 뒤에도 여전히 시간강사로 떠도는 처지에 대한 자조도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새 평론집의 기조는 여전히 비판적이고 전투적이다. 이 책에서 그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반년 뒤인 2013년 9월호 <현대문학>에서 박근혜의 수필을 가리켜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 (…)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고 극찬한 평론가 이태동, 그에 앞서 대통령 후보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고 “리영희, 백낙청 등을 비판하는 막말을 쏟아내며 신흥 소음지로 등장”한 김지하, 2010년 천안함 침몰을 북의 공격으로 단정하고 북에 대한 응징을 촉구하는 칼럼을 쓴 정호승 시인, 반유신 투사에서 한나라당 입당과 이명박 지지로 돌아선 양성우 시인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겨레

<엘리트 문학의 종언시대>의 저자 최강민 문학평론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엘리트 문학의 종언시대>의 저자 최강민 문학평론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이 대학교수이거나 시간강사인 문학평론가들로 하여금 평론을 중단하고 논문 쓰기로 돌아서게 만든 한국연구재단의 평가 시스템 확산과 논문 중심주의, 그 결과 서구 이론 공부에 치중하고 평론에서도 각주를 남발하는 문학평론가들, 그리고 “등단 제도, 발표 지면, 문학상 등을 통해 한국 문인들을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문학권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2000년대 들어 한국문학은 급격하게 침몰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한국문학을 벼랑으로 내몬” “문학평론가의 연이은 자살골”이 있었다.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출판 자본의 들러리로 전락해 주례사비평을 남발하는 주류 문단의 평론을 가리켜 그는 ‘엘리트 좀비 평론’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책에는 최인석·이시백·임성순·장강명 등 남성 작가들의 최근작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 작품평도 들어 있다. 그는 “장강명의 순발력과 손아람의 깊이, 방현석의 열정이 결합된다면 시대를 뛰어넘는 역작이 나오지 않을까”라며 아쉬움과 기대를 아울러 표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하는 웹진 <문화 다>를 기반으로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 다 평론상’(가칭)을 제정해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희망을 찾기 위한 최후의 안간힘인 셈이다. 그럼에도 평론을 가리켜 ‘지독한 저주’라 일컫는 그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하다.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후배 세대 평론가들의 맥이 끊긴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저희 세대 비판적 평론가들의 작업이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었다면 후배들에게도 믿고 따를 모범이 되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다시 태어난다면 소설 창작이나 음악을 한다면 몰라도 문학평론을 할 것 같진 않아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