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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 한국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허세 없는 한국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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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별 16개, 영국 셰프 고든 램지

카스 프레시 모델 제안 흔쾌히 수락

강한 한식과 잘 어울려 자주 마셔

비판은 비판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한국 맥주 맛없다는 사람 엉덩이 차 주겠다"

중앙일보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고든 램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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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쿡방’이라는 예능 장르에서 이 남자가 세계적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든 램지(51). 90년대 말 방송을 시작해 ‘헬스키친’, ‘마스터 셰프’ ‘램지 키친 나이트메어’ 등 다수의 영국산 요리 서바이벌에서 ‘에프(F)’자가 들어간 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 신참의 실수를 무섭게 몰아세우거나 입에 넣은 음식을 요리한 사람 보는 앞에서 뱉어버리는 솔직함으로 유명하다.

영국 요리 방송의 원조인 델리아 스미스(76)가 ‘엄마표 가정식’, 한국에 잘 알려진 제이미 올리버(42)가 ‘건강한 자연식’을 내세우는 데 반해 램지는 본격 파인 다이닝을 추구한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 영국 저널리스트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혹평한 한국 맥주, 카스 프레시 모델로 한국에서 2박3일간의 홍보 일정을 소화한다.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이렇게 추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블러디 프리징”(X나 춥다)이라고 인사하는 그에게 ‘국산 맥주가 진짜 맛있었냐’는 질문부터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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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 카스 프레시 광고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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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 프레시 광고에서 “블러디 프레시”라고 한다. 본심인가.

”내가 유튜브에서 굉장히 거친 말을 하긴 하지만 ‘블러디’ 는 정말 순화한 말이다. (웃음) 난 현실주의자이고 진짜만을 좋아한다. 광고모델 제안을 받았을 때 우선 마셔보겠다고 했다. 마셔보니 이미 많이 마셔본 맥주더라. 15년 전부터 런던, 로스앤젤레스 한식당을 자주 가기 때문에 익숙했다. 광고도 찍고 맥주도 마시고 한식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카스는 한국 음식의 진정성(authenticity)과 잘 맞는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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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고든 램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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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고든 램지의 카스 칭찬이 진심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다.

“10년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요리 대회에 참여했는데 미쉐린 별을 받은 셰프들이 길거리 음식과 대결하는 형식이었다. 난 웨이터 26명, 스태프 25명을 데리고 했는데 노점을 하는 96세 할머니 요리사에게 참패했다. 전혀 창피하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 그 지역 음식 문화를 경험하고 다문화가 살아있는 시장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난 한국 음식을 주문하면서 최고급 와인 리스트를 달라고 하기 싫다. 편하고 허세없는 음료를 마시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카스 맥주는 한국 음식과 완벽한 조합이다.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라 (강한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린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런 힘든 시기에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맥주다. 과시적인 술이 아닌 것이다. 고급스러운 IPA 맥주나 ‘나 이렇게 잘났어’하는 맥주가 아니라 선택했다. 카스는 한국 일반 사람들의 맥주다. 그게 좋았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에 20여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램지는 움직이는 대형 기업이다. 대륙을 오가며 레스토랑을 관리하고 각종 방송 출연을 병행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세계 외식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인물로 연간 수입이 약 6000만 달러(659억원)로 추정된다. 그가 카스 광고로 오비맥주에서 받은 모델료는 한류 스타인 배우 송중기의 약 절반으로 전해진다. “광고 때문에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게 오비맥주 측 설명이다.

-‘기름기가 많아 이라크처럼 침공당할 수 있겠다’와 같은 독창적인 독설을 한다. 방송 설정인가도 했다. 혹시 화려한 독설을 위해 따로 노력하나.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빠르고 쉽게 지루해한다. 누가 생선 요리 사진을 보내주면서 평을 구했는데, 정말 멕시코만에서 하루 종일 떠다니다가 해변에 멈춘 죽은 생선이 떠올랐다. 머리에 그냥 떠오르면 말을 하고 따로 신경쓴 적은 없다. 빠르고 날카롭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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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TV에서 방영되는 미국판 &#39;헬스키친&#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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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별을 3개(런던 첼시의 ‘고든 램지 레스토랑’)를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는 셰프다. 셰프로 덕목을 꼽자면.

“1998년 집을 담보로 200만 파운드(약 29억원)를 대출 받아 식당을 냈다. 아내를 설득하는데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때 한 말은 ‘셰프로의 DNA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왕 이 여정을 시작했으니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지금도 테이블 10개에 점심엔 35인분, 저녁엔 45인분 만을 낸다. 월~금 영업하고 주말엔 쉰다. 팀에겐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토요일 문을 닫겠다고 하니 ‘바보같다’고 했다. 난 그래서 ‘난 월요일 밤을 가장 바쁜 날로 만들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아직 규모를 작게 유지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내가 없어도 일관성 있게 돌아가도록 했다. 내가 좋은 스승에서 배운 것처럼 어린 요리사들을 교육한다. 20년 동안 헤드 셰프 두명을 양성해냈다. 이젠 요리만 잘 해서는 안된다. 셰프도 마케팅을 해야 하고 하나의 브랜드처럼 캐릭터와 성격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난 프로덕션을 유지하고 있으며, 셰프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 별 3개짜리 셰프도 비즈니스에서는 바보일 수 있다. 다 잘해내기 위해선 교육을 받아야하고 조언해 줄 사람도 필요하다”

고든 램지는 후학 양성에도 열심이다. 16살 막 사회에 나온 셰프 지망생을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훈련시키는 3년짜리 인텁십도 그중 한다. 1년차엔 별 1개짜리, 2년차엔 별2개, 3년차엔 별3개짜리 레스토랑에서 훈련을 시킨다. 업계에서의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대영제국훈장(OBE)를 받기도 했다. 비행기가 연착돼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할 뻔한 일화는 유명하다. 친절하고 스스럼 없지만 자기 PR에도 능한 고든 램지는 한국 기자들에게 이를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왕님은 TV를 잘 안보는 것 같다. 내가 욕을 그렇게 많이 하는 지 알았다면 훈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카스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나. 한국 셰프도 세계화에 노력하고 있는데 조언을 하자면.

“많은 셰프들이 와인 리스트를 맥주 리스트로 바꾸고 있다. 맥주의 음식과의 페어링이 굉장히 중요해진다는 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40~50달러의 와인보다는 맥주가 부담이 덜하다. 유럽·미국에서는 외식문화가 가벼워지는 추세다. 메뉴도 그렇고 드레스 코드도 점점 그렇다. 카스는 그런 의미에서 경쟁력이 있다. 파리ㆍ뉴욕ㆍ런던 한인타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맥주이고, 생맥주의 맛도 괜찮다. 한국 음식은 세계화 가능성이 좋다. 음식과 재료에 독창성이 있다. 지난 토요일(11일) 뉴욕의 한국식 바베큐 레스토랑인 ‘꽃’(COTE)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훌륭했다. 여긴 오픈 3개월만에 미쉐린 별을 받았다. 식재료의 진정성이 있는데다가 손님이 직접 요리를 해야한다는 점도 획기적이다. 나도 테이블마다 놓인 브루스터를 갖고 싶었다. 이런 성공이 한식의 세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한국 맥주는 ‘소맥’ 때문에 지금의 맛을 유지한다는 말이 있다. 혹시 소맥을 마셔봤나.

“굉장히 위험한 술이다. 두통약을 상비해야 하는 술이더라. 애가 넷인데 첫 딸이 19살이 돼 대학에 갔다.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간 사람이다. 대학 입학전 맥주 마시는 법을 직접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6개월 뒤 집에 돌아온 딸이 ‘아빠 이거 신기하다’며 소주밤(bomb)을 마시자고 하더라. 한 잔 먹었는데 두째잔은 거절했다. 딸한테는 ‘너나 마셔라’고 했다.”

-나쁜 요리사는 어떤 사람인가

“게으른 요리사보다 나쁜 것은 없다. 대충해도 고객은 모를 것이다라고 믿는 것인데,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뚱뚱한 요리사를 믿지 말아라. 보통 마른 요리사를 믿지 말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뚱뚱한 요리사는 자기가 좋은 재료를 먹어치워서 그렇다. 밥을 먹고 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방 안에서는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하고 계속 맛을 봐야하는데 식사를 하다니. 마른 요리사를 믿어라.”

-고든 램지가 CF에 출연한 배경에는 몇년 전 한 영국 매체의 한국 특파원이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해서 생긴 논란이 있다. 실제로 서구권 사람들은 맛이 없다며 심하면 ‘오줌맛 같다’는 말도 한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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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동강 맥주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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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맛이라니! 그건 절대 아니다. 유럽인들은 약한 혀를 갖고 있다. 매운 맛이나 강한 음식에 익숙하지 않다. 깨끗하게 씻어주는 맥주의 맛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카스는 한식과의 블랜드가 좋다. 그런데 평론가들이 지난 15년간 내게 한 말을 다 고민했더라면, 난 여기에 없을 것이다. 카스든 나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10점을 받다 9점을 받으면 ‘램지 끝났다’는 기사가 나온다. 9점도 좋은 점수인데 말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된다. 대신 내가 그 영국 언론인을 만나면 엉덩이를 차 주겠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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