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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아놔, 넌 상품권이다" 1100억 먹인 '앱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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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앱으로 불법 주·정차 등 신고

한해 18만건 넘어, 1년새 51%증가

시민 활약으로 과태료 1100억 넘어

“높아진 시민의 행정 참여 욕구 반영”

신고자와 당하는 사람 간에 마찰도

“신고요건 강화해 시만간 불신 없애야”

앱 켜는 '감시자들'···교통법규 위반 시민신고 급증


‘이건 아니지….’

출근하던 직장인 박모(36·서울 중구)씨가 걸음을 멈췄다. 눈앞에 보도에 주차된 자동차가 있었다. 익숙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신고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켰다. 자동차는 물론 불법을 입증할 수 있도록 차 주변의 상황까지 촬영했다.

확보된 ‘증거사진’을 첨부하고 신고 위치를 입력한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최근 1년간 이렇게 교통법규 위반 100여 건을 신고했다. 박씨는 스마트폰 신고 앱으로 교통법규 위반 행위를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스마트 감시자’다.

그가 '감시자' 일을 시작한 건 마트 주차장에서였다. 장애인 주차구역 불법 주차를 신고했다.

“차에서 사람이 멀쩡히 내려서 걸어가길래 봤더니 장애인 차량 표지가 붙어있지 않았어요. 순간, 이건 바로 잡아야겠다 싶었지요.”

그 후 그는 분야를 넓혔다. 버스전용차로 위반, 교차로·횡단보도 불법 주·정차 등을 발견할 때마다 신고했다.

번호판이 잘 보이게 찍는 건 기본이고, 증거가 좀 더 필요하면 동영상도 촬영했다. 박씨는 “신고 며칠 후 구청으로부터 ‘신고 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는 문자를 받는다. 내가 시민으로서 뭔가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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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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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받는 보상금은 없다. 과거의 ‘카파라치' 류의 보상금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운영 중인 ‘서울스마트불편신고’ 앱 집계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 신고는 2015년 12만3000건에서 2016년 18만6000건으로 약 51% 증가했다.

올해는 10월 말까지 19만554건의 신고가 들어와 작년 기록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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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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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와 같은 ‘스마트 감시자’들의 활약으로 과태료 부과 액수와 건수도 증가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주·정차 위반 과태료는 2015년 1078억원(270만 건)에서 2016년 1138억원(294만 건)으로 늘었다.

유명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신고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온다. 이런 신고 행위를 ‘상품권을 (위반자에게) 보내드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태료 고지서를 상품권이라는 은어를 쓴다. 세부적인 신고 방식을 알려주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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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신고앱을 활용한 교통법규 위반 신고가 늘고 있다. 자동차 커뮤니티들에선 이런 신고 행위를 두고 ‘상품권(과태료 고지서)을 발송했다’는 암시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신고 경험담과 세부적인 신고 방법이 다수 올라와 있다.[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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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신고 앱은 불법 내용을 입증할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보내면 신고가 접수된다. 위반 사실이 확실하면 각 구청의 담당 공무원이 과태료를 부과한다. 과거 보상금을 노린 ‘카파라치’(교통위반 신고포상금제)와 달리 평범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박문재 서울시 공간정보담당관은 “신고자에게 물질적 보상은 없고, 4건당 1시간의 자원봉사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를 신청하는 사람은 신고자의 10%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의 높아진 행정 참여 욕구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자체나 정부는 이런 점을 사회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앱은 자신이 겪는 불편을 해결하는 ‘자구책’이 되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 자녀를 둔 주부 이미경(52)씨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휠체어를 싣고 내릴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와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해결되지 않던 일이 신고 앱을 통해 해결됐다. 이씨는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와 상관이 없어도 신고하곤 한다”고 말했다.

불법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법 위반자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직장인 권모(40·서대문구)씨는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차 주인이 뛰어와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노모(38·성북구)씨는 “차 주인이 어디선가 나타나 ‘너였구나. 내가 숨어서 다 보고 있었다’면서 멱살잡이를 했다”고 회상했다.

앙심을 품은 ‘보복성 신고’나 무차별적 신고를 즐기는 ‘신고꾼’들은 자칫 제도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한 자치구의 관계자는 “단속에 걸린 사람이 다른 위반 차량을 찾아다니면서 ‘너도 한번 당해봐라’의 심정으로 매일 신고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치구의 관계자는 “신고를 당한 사람이 ‘공무원이나 경찰도 아닌 자기들이 뭔데 신고하느냐’고 격렬하게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전까지 교통 관련 법 적용이 위반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측면이 있었다”면서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긍정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구정우 교수는 “무분별한 신고는 시민 간에 불신을 키울 수 있다”면서 “신고 요건을 강화하는 등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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