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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커버스토리 - 낚시, 놀이가 되다]‘아재 취미’ 낚시, 국민 마음 낚은 미끼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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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인구 700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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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 틀면 강과 바다를 배경으로 낚싯대를 든 연예인이 나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직접 낚은 물고기를 자랑하는 ‘인증샷’이 넘쳐난다. 낚시 인구 700만 시대의 흔한 풍경이다.

최근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낚시는 올해 처음으로 ‘부동의 1위’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의 반열에 올라섰다. ‘아재’들의 취미로 취급받던 낚시가 20~30대 여성,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소득 수준 향상과 주 5일제 정착은 체험형 레저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가짜 미끼(루어) 등 낚시 장비와 기술의 발전도 대중화를 앞당겼다. 취향에 따라 혼자서도, 여럿이도 즐길 수 있는 게 낚시다. 이정래 경북대 교수는 “한동안 붐이었던 캠핑 문화가 한층 진화한 것이 낚시”라고 분석했다.

낚시꾼들은 수렵 본능을 자극하는 승부욕, 경력이 쌓일수록 늘게 되는 기다림의 미학,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힐링 효과 등을 낚시의 매력으로 꼽는다. 급격한 낚시 인구 증가로 환경오염과 남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이젠 높아졌다. 매주 1500여명의 낚시객이 몰린다는 강화도의 한 바다낚시터를 찾아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낚고 있는지 직접 살펴봤다.


▶던졌다, 낚였다…연인도 가족도

>>낚시, 등산 제치고 ‘국민취미’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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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시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차를 돌렸다. 1㎞쯤 달리자 바닷물을 가둬 만든 커다란 낚시터가 나타났다. 일요일인 지난 12일 강화도는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섬 초입에 자리 잡은 ‘황산초지바다낚시터’는 일찍부터 100여명의 낚시꾼들로 붐볐다. 최근의 낚시 열풍을 증명이라도 하듯 초보자용 포인트엔 유독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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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징그러워. 입에서 뭐가 나왔어.” 장갑 낀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쥐고 갯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던 박한나씨(28)가 소리를 질렀다. 옆에 서 있던 남자친구 장철원씨(29)가 낚싯대를 건네받아 능숙한 솜씨로 채비를 마저 완성했다. 두 사람은 이날이 두 번째 낚시터 데이트라고 했다.

먼저 낚시를 배운 건 장씨다. 대기업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한 달 전쯤 처음 낚시터를 찾았다. 재미를 느껴 평일에도 휴가를 내고 다니기 시작한 낚시터 출입이 벌써 스무번 남짓이다. 박씨는 답답하게 앉아있어야 하는 낚시가 왜 좋은지 이해 못 하다가 장씨를 따라 낚시터에 한 번 다녀온 뒤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낚싯대 던져놓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보면 캠핑 온 느낌도 나고, 추울 때 핫팩 터뜨려가며 서로 챙겨주다 보면 애틋한 마음까지 생기던걸요.” 주말이면 맛집 방문을 즐기던 커플은 이제 낚시터로 데이트 주무대를 옮겼다.

■ 여성, 커플, 아이까지… 낚시에 빠지다

장씨 커플은 빠르게 변하는 낚시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낚시는 더 이상 ‘아재’들만의 취미가 아니다. 담배연기 자욱하고 중장년 남성들만 그득하던 낚시터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20~30대와 여성, 가족 동반 낚시가 대세다.

낚시터 맨 끝 방갈로를 빌려놓고 낚시 삼매경에 빠진 김유환(36)·윤진(43)씨 부부도 그중 하나였다. “올해 8월 안면도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주꾸미 낚시를 경험했는데 친구 커플까지 넷이서 100여마리를 잡은 거예요. 그 손맛을 잊지 못해서 주말마다 낚시하러 다니고 있어요.” 김씨는 근사한 낚시용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살아있는 빙어를 미끼로 쓰기 위해 미끼 박스에 기포기로 공기방울을 만들어 넣고 있었다. 김씨는 낚시 입문 후 한 달 만에 각종 장비를 구입하는 데 300만원가량을 썼다고 했다. 고가 장비 구입으로 이어지는 취미생활은 종종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 아내 윤씨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전에 사회인 야구를 할 때는 주말마다 운동하러 가서 저 혼자 심심했는데 낚시하면서부터는 둘이 같이 장비도 의논하고 주말 낚시여행 계획도 짜면서 대화가 늘었어요.”

부부는 전날 저녁 7시부터 한숨도 자지 않고 20시간이 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자 남편 김씨가 우럭과 부시리, 점성어 등 물고기 10여 마리가 가득 담긴 어망을 들어보였다. “어제부터 한 마리도 못 낚다가 방금 1~2시간 사이에 낚은 거예요. 이러니 피곤한 줄도 모르고 빠져서 하는 거겠죠.” 대답하는 그의 시선은 이미 멀리 찌를 향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여성 낚시 인구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낚시하는여자’를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1만3000여개의 관련 사진이 주르륵 뜬다. 네이버 카페 ‘낚시하는여자’ 운영자 조윤희씨(33)는 “남성 중심의 기존 동호회 문화에서 여성들이 낚시 배우는 게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아 카페를 개설했다”며 “회원은 30~40대가 제일 많고 미혼 여성이 절반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달 전국 바닷가를 돌며 출조 행사를 한다. 남편과 아이 등 가족을 동반하는 회원도 많다.

■ 낚시는 어떻게 ‘국민 취미’가 됐나

낚시는 올해 처음으로 ‘부동의 1위’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의 왕좌에 등극했다. 지난 2분기에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가 ‘향후 3개월 내 취미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중복 응답)한 결과, 낚시를 하겠다는 사람이 40%로 나타나 등산(34%)을 앞지른 데 이어 3분기에는 그 격차를 3%포인트 더 벌렸다. 50대 이상 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낚시는 어떻게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새로운 ‘국민 취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주 5일 근무제도가 정착된 이후 등산, 글램핑 등 다양한 야외 레포츠를 즐겨온 사람들이 새로운 취미를 찾다가 낚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월간낚시 21’의 김동욱 편집장은 “낚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등산 인구가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라면서 “등산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취사도 못하는 등 제약이 많지만, 낚시는 밤새도록 찌만 보고 고리타분하게 앉아있는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의외로 다이내믹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과시할 수도 있는 등 등산과는 또 다른 성취감이 있다”는 점을 낚시가 20~30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매력으로 꼽았다.

낚시가 ‘나홀로 여행족’들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새로운 ‘힐링’ 취미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홍범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장은 “승패와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요가, 등산 같은 취미를 찾는데 낚시가 그런 ‘힐링’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물론 여럿이 어울려 가면 더 큰 물고기를 놓고 경쟁을 즐길 수도 있지만, 낚시의 목적을 무엇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혼자 훌쩍 떠나 조용히 즐길 수도 있는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tvN <삼시세끼>나 SBS <정글의 법칙>이 출연자가 낚시하는 모습을 재미 포인트로 활용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엔 채널A <도시어부>, EBS <성난 물고기> 등 본격 낚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어려워 보이는 릴낚시 외에도 장비를 빌려 도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낚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20~30대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층이 만지기 징그러워하는 생미끼 대신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루어(가짜미끼)가 개발된 것도 낚시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루어낚시로 잡을 수 있는 어종이 한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루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주꾸미, 광어, 우럭, 대방어, 농어 등 인기 어종 대부분을 루어로 낚을 수 있게 됐다.

낚시 입문자들이 늘면서 이들을 맞는 업체들은 시설 투자를 늘리고 맞춤형 강습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손님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강정진 황산초지낚시터 대표는 낚시 채널에서 방송 진행을 하다 시장 가능성을 보고 낚시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영업 전략은 철저히 낚시 초보자에게 맞춰져 있다. 현대식 시설로 여성과 젊은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건 물론이고 원하는 손님에겐 미끼를 바늘에 꿰어 물고기를 잡기까지 낚시의 전 과정을 직원들이 일대일로 강습한다.

■ “낚시하면서 반찬이 풍성해졌어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서 낚시터엔 가족 단위 낚시객들이 더 늘기 시작했다. 회사원 강승철씨(39)는 아들 민준군(7), 딸 민진양(3)과 함께 낚싯대 두 대를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렸다. 민준군은 이미 5살에 낚시로 문어를 낚아본 경험자다. 아직 걸음도 서툰 민진양은 아빠 대신 지렁이 미끼를 바늘에 꿰어보겠다고 칭얼댔다.

낚시터 단골인 윤희복씨(51) 가족이 나타나자 주변이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낚시 경력 30년의 베테랑인 윤씨는 지난 5월 개업 때부터 이 낚시터를 거의 매주 찾고 있다. 낚시터에서 손맛에 푹 빠진 아내와 아들 때문이다. 윤씨의 아내 차경해씨(48)는 “오늘도 30㎝가 넘는 우럭을 낚았다”며 싱글벙글했다. “병어는 찜 해먹고 우럭은 매운탕 해먹고 돔은 튀겨먹고… 낚시하면서 집에 반찬이 풍성해졌죠. 생선 살 일이 없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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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되자 낚시터 입구의 ‘초보존’에서 이벤트가 벌어졌다. 물고기를 못 낚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차례로 손맛을 봤다. 나무 데크 위에 갓 잡아올린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참돔과 우럭, 감성돔이 펄떡펄떡 뛰었다. “와 대박이다.” “빨리 사진 찍어줘.” 멀리 수평선이 조금씩 붉어지는 동안 낚시터엔 떠들썩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김형규·김지윤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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