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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고]기후정보 제공도 개발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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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류문화에 기후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기후변화는 한때 융성했던 문화의 종말을 고하기도 하였다. 마야문명의 붕괴가 그렇고 바이킹족이 경영했던 그린란드 문화의 종말도 기후변화의 영향이었다. 그런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실감 나는 기후변화 예들은 많다. 우리가 즐겨 먹는 명태는 따뜻해진 동해에서는 찾기 힘들게 되었고, 대부분을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하여 식탁에 올린다.

이러한 기후변화를 단기간이라도 먼저 알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올겨울의 날씨가 포근하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기름을 비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예측 정보는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아 활용의 정도가 떨어지고 있다.

다행히 적도 지역의 기후 예측은 믿을 만한 신뢰도를 견지한다. 열대 지역의 기후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요소인 엘니뇨 또는 라니냐 현상에 대해 많은 이해가 이루어졌고 따라서 신뢰도 높은 기후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집중호우 빈도가 커진다면 전염병이 만연하게 되고, 토양침식이 심해져 농업생산량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기후 예측을 통해 이를 대비할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계절예보를 포함한 장기예보 정보를 제공하는 기후정보 서비스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들의 합의하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기후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기구를 유치하였다. 12년 전 부산에 설립한 APEC기후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의 활동도 인정받아 WMO에서도 글로벌 센터 중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심이 되어 미국 기상청과 NASA, 영국·호주 기상청, 중국·일본 기상청 등과 협력하여 양질의 기후 예측 자료를 제공하는 원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연 2조원을 개발도상국에 원조하고 있다. G20 국가로서, 또한 OECD개발위원회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가 기꺼이 부담해야 할 몫일 것이다. 원조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도로와 항만, 주택개량 등 현물 인프라 구축에 많은 재원이 들 수 있다. 기후자료 원조도 이에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실물원조에 비해 매우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이 독자적으로 태평양기후변화센터(PCCC)를 설립하기로 하고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건물공사에 착공했다고 한다. 기후자료의 공급효과를 익히 알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활동을 내심 못마땅해하며 탐을 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먼저 시도하여 10여년 이상 키워온 기후 예측 플랫폼과 이를 이용한 원조의 틀이 유명무실해질까 걱정이다.

이왕 원조를 한다면 실리 측면에서 투자액에 비해 외교적·경제적 효과가 큰 부분, 또 가급적 우리나라 경제와 일자리에 도움되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후정보의 제공은 현물이 아니라 큰 돈도 필요하지 않고 국내 일자리도 창출하니 매우 적절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기후정보 서비스에 적극적인 고려와 투자를 요청한다.

<손병주 한국기상학회장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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