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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끝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 더…' 착잡함 속 일상 복귀한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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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연기' 초유의 상황 맞은 고3 학생들

휴업 예고된 16일도 평소처럼 등교해 자습

"처음엔 망연자실, 피해 상황 보고 연기에 공감"

수험 기간 늘어나는 건 부담과 스트레스지만,

지진 피해 심한데 예정대로 수능 강행은 '불공정'

중앙일보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16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고교 자습실에서 아침 일찍부터 고3 수험생들이 등교해 평소처럼 공부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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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된 16일.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자습실엔 이른 시간부터 트레이닝복 위에 두터운 점퍼를 껴입은 고3 학생들이 속속 등교했다. 이 학교는 이날 휴업임에도 오전 7시30분부터 스무 명 가량의 학생이 자습실에 짐을 풀고 공부를 시작하더니, 오전 10시쯤 되자 서른 명이 넘는 학생이 자리를 채웠다. 학생들은 “오늘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가까스로 버티면서 공부해왔는데, 수능이 연기돼 일주일을 더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면서도 “선생님과 부모님이 ‘좋게 생각하라’고 다독여주시고, 친구들과 ‘멘탈 잡자’ ‘정신 차리자’라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자연 재해로 인한 수능 연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음에도 수험생들은 하루만에 차분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15일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전국 고교에 휴업 지침을 내렸지만 일부 학교는 16일 모든 교사가 출근하고 고3 학생들에게도 ‘도시락을 지참해 등교하라’고 지시해 평일과 똑같이 자습하도록 지도했다. 휴업을 한 대다수 학교들도 교장·교감과 고3 담임교사들이 출근하고 학교자습실과 교실을 개방해 등교한 학생들이 평소처럼 공부하게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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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포항 지진발생으로 1주일 연기된 16일 오전 대전시교육청 제27지구 28시험장인 동방고등학교에서 학교 관계자가 고사장 알림 현수막을 제거 하고 있다.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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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교육부가 시험 하루 전에 수능을 일주일 연기한다고 발표하자 일부 수험생들은 허탈감에 눈물을 흘리거나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등 평정심을 잃기도 했다. 송혁준(서울 휘문고3)군은 “수능이 연기됐단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친구한테 수차례 전화를 하고, 한동안 집 주변을 계속 종종걸음으로 돌며 날뛰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능 연기 발표에 펑펑 울었다는 서울의 한 여고 3학년 학생은 “수능 끝나고 아이돌 공연을 보러 콘서트장에 갈 생각이었다”면서“시험 준비를 더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어렵게 구한 아이돌 콘서트 티켓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대다수 수험생들은 “지진이 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거나 2G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긴급재난 문자나 수능 연기에 대한 공지를 제때 받지 못한 것이다. 경기도 김포의 한 고3 이모군은 “15일은 수능 전날이라 온 가족이 아침부터 휴대전화를 꺼뒀다. 자습을 마치고 오후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와 수능일이었던 16일 날씨를 검색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켜고서야 ‘수능 연기’ 뉴스를 봤다”고 말했다. 이군은 “처음에는 ‘괴담’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친구들한테 ‘이거 실화냐?’는 문자가 몇십개 받고서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음을 다잡고 수능 교재를 펼쳐들었지만 수능 이후 기말고사와 수시전형 대학별고사 등이 줄줄이 일주일 뒤로 늦춰지자 학생들은 “수험 기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것 같아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정시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 불암고 3학년 서영석군은 “수능 성적 발표일도 다음달 6일이었다가 12일로 늦춰졌다”며 “그만큼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시간도 뒤로 밀려난 셈이니 부담이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수시전형을 준비 중인 문일고 3학년 유시원군은 “수능 끝나고 곧바로 면접과 논술 등이 이어지는데, 정확한 전형 날짜와 장소 등을 다시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등 달라진 사항이 많아 번거롭고 불편한 건 사실”이라 말했다.

고교의 학사 일정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대다수 고교가 16일 수능을 치른 뒤 고3 기말고사를 20~22일로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고1~2 역시 22일 전국연합평가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수능이 23일로 늦춰지면서 22일까지 모든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수능 고사장 형태로 재배치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3 기말고사와 전국연합평가 일정도 미뤄야 한다. 서울고 이창우 교감은 “기말고사 등 시험뿐 아니라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의 진로·진학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학교측이 마련한 외부 유명인사 초청 강의나 단체 공연 관람 등도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한다”며 “교사 회의를 거쳐 최대한 학생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신중하게 학사 일정을 조정할 계획”이라 얘기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고3 학생들은 “개인적으로는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영성(서울 휘문고3)군은 “처음 수능 연기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이없고 황당했는데, 뉴스를 통해 포항의 지진 피해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자 수능 날짜를 옮기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항 학생들은 학교와 집에 균열이 가고 여진도 있어 충격이 클텐데, 예정대로 수능을 강행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 얘기했다. 임준녕(서울 문일고3)군도 “수능 연기가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아쉬운 게 사실이지만, 피해를 입은 포항 학생들을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며 “만약 여진이 계속되는 등 포항 학생들이 안정을 취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한차례 더 미뤄서라도 모두가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 수능을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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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경북 포항시 북구 한 다세대 주택 담벼락이 지진 영향으로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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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입시전문가들도 “이미 결정된 상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동원 휘문고 교장은 “갑작스런 수능 연기로 인해 공부 패턴을 잃고 마음이 붕 뜬 학생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친구들과 괜히 불길한 얘기를 나누며 불안감을 키우는 등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수능 연기는 좋은 기회다’ ‘나는 할 수 있다’와 같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해야 남은 일주일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박형수·이태윤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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