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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대입 수난사]② ‘물수능’ 효시는 1999년 입시…첫 만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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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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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매 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시험 난이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난이도에 따라 ‘물수능’과 ‘불수능’을 나누는데 만점자 수가 이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1968년 예비고사가 도입되고 49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대 대입 시험 만점자는 총 186명이다. 1968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동안 단 한 명의 만점자도 나오지 않다가 1999년 수능에서 처음 만점자가 탄생했다. 이때부터 3년 동안 68명의 만점자를 배출해 1999년은 ‘물수능’의 효시로 본다.

1999년 만점자의 주인공은 한성과학고등학교 출신의 오모 양이다. 오 양은 당시 이미 고교장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 물리학과에 합격한 상태였다. 오 양은 학부 졸업 이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생물 물리학과 박사학위를 거쳐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시스템 생물학과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400점 만점 중 평균 점수는 249.6점이었다. 1998년 221.8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7.8점이나 오른 셈이다. 응시 인원 84만 명 중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300점 이상을 받았고 1~2개 이하로 틀린 398점 이상은 10명 정도로 추산된다. 첫 만점자가 나온 뒤부터는 만점자가 쏟아졌다. 2000년에는 만점자 1명을 배출, 2001년에는 무려 66명의 만점자가 나왔다. 당시 수능에서 만점을 받고도 서울대에서 떨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다음 해인 2002년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꼽힌다. 출제자들은 66명의 만점자를 낸 전년도 수능 난이도를 높이고자 어려운 문제들을 출제했고 전년에 비해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 기준으로 23.3점이나 떨어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던 학생과 학부모에게 유감스럽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수능출제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수능 출제자들은 6월, 9월 실시하는 모의평가시험을 통해 수험생의 성취수준을 파악한 후 출제 난이도를 최종 판단해 결정한다. 학원가에서는 올해 수능 난이도는 국어는 전년과 비슷하고 수학은 9월 모의고사보다 다소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분석했다. 영어는 첫 절대평가인 만큼 난이도 예상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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