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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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 소속 직원들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두고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은 신입 공채시험을 거쳐 선발된 정규직, 다른 한 명은 무기 계약직 노동자입니다. 먼저, 이분들의 입사 과정부터 살펴보시죠.
#정규직 이야기
A 씨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교사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꿈은 쉽게 현실이 되지 않았고, 고민 끝에 진로를 바꿔 공기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필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경영학, 행정학 공부도 했습니다. 녹록치 않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3년, 결국 서울교통공사에 합격했습니다.
#무기계약직 이야기
지난해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중이던 한 청년이 안타깝게 숨졌습니다. 서울시는 하청업체 위탁으로 이뤄지던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직접 관리로 전환하기 위해 '안전업무직'이란 이름의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채용했습니다. 작년 9월, B 씨는 그렇게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스크린 도어 수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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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서로 날 세우는 까닭은
같은 지붕 아래서 각자의 일을 해오던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들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한 건 지난 7월부터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산하 기관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단 계획을 발표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파견, 용역 등 명백한 비정규직을 전환하는 작업도 쉽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높고 ‘사실상의 정규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말처럼 쉽진 않았습니다.
논란이 확산된 계기는 ‘정규직의 반발’이었습니다. 공채를 통해 입사한 정규직원 중 입사 4년 차 이하의 젊은 직원들이 1인 시위와 집회까지 하며 집단 반발에 나선 겁니다. 이들은 퇴근 이후 시간은 물론 자발적 휴가까지 사용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1인 시위 중 만난 일부 직원은 "태어나서 이런 시위는 처음 해본다", "부모님이 아시면 큰일 난다”며 마음을 졸이면서도 “쉽지 않은 채용 절차를 뚫기 위해, 자격 조건을 갖추기 위해 보냈던 시간과 노력이 무시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들이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합리적 차이"를 인정하라고 주장합니다. 입사 1년 차인 한 정규직원은 SBS와 인터뷰에서 “공채 경쟁률이 77대1이다.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이 늘면서 경쟁률도 점점 더 높아진다”며 “정규직은 필기시험에 인성검사까지 몇 단계를 거치는데 현재 무기계약직은 면접만 본다. 이렇게 채용 절차와 과정이 다른데, 처우를 동일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도 할 말이 없진 않습니다. 서울시에서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고, 이후 노사 협상 진행 과정을 살펴보는데, 납득할 수 없는 차별적 논의가 진행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무기계약직이 말하는 '차별'은 신입사원보다 낮은 급수로의 전환입니다. 정규직들이 ‘역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서자 사측이 기존엔 없던 ‘8급’을 만들어 무기계약직을 전환시키겠단 대안을 제시합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는 정규직 신입 공채를 통해 입사할 경우 7급부터 시작합니다. 즉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돼도 신입사원보다 낮은 8급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무기계약직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임선재 씨는 “기존에 있던 처지, 처우마저도 후퇴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8급 문제도 그렇고,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경력도 인정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이라고 말했습니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이달 초부터 서울 성동구 교통공사 본사 앞에 농성장까지 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성장 설치를 제지하는 회사 측 관리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어졌고, 이를 두고 일부 정규직원들이 ‘폭력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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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가 협상하라’ 뒷짐 진 서울시…깊어지는 노-노갈등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양쪽의 반발, 그 끝은 모두 서울시를 향합니다. 정규직은 ‘섣부른 정규직 전환 추진’을 탓하고 있고, 무기계약직은 ‘차별 없는 전환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 문제를 두고 ‘노사가 협상해 방법을 찾아야 할 일’이라는 입장입니다. ‘서울시가 한 발 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서울교통공사 측도 “노사 협상 중이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입장 발표는 피한 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그 사이, 노동자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집니다. 노조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노사 협상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서울시가 못박은 정규직 전환 일시가 내년 1월 1일이다. 행정적 절차를 고려해보면 다음 주까진 협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협상은 진척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 포부와 달리 현장은 이렇듯 혼란과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각 기관의 인건비 예산 총액이 크게 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기존 정규직의 배려와 희생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목표 규모와 시기를 못박아 놓고 논의를 시작하다보니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당장은 서울교통공사의 내홍이 대표적으로 불거지고 있지만, 비슷한 갈등은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던져놓고 방법을 알아서 찾으라는 식의 정부 방침은 결국 정규직이든 무기계약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 마음의 생채기만 남길지 모릅니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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