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벤치서 입는 패딩 스타일 인기
오버사이즈 강세로 완판 행렬
안에는 얇고 짧게 입어야 '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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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브랜드 헤드 전속 모델인 가수 선미의 화보. 보디 슈트에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사이 하이 부츠를 신고 벤치 다운을 입었다. [사진 코오롱 F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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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선 한겨울 옷차림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다. 무릎을 지나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두둠한 패딩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다. 날씨 예보를 놓친 귀차니스트가 아닐까 싶지만 실상은 다르다. 솜이불을 덮어 쓴듯한 롱패딩이 바로 올겨울 유행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아웃도어는 물론 캐주얼 브랜드까지 교복처럼 비슷비슷한 제품을 앞다퉈 출시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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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핏의 팀 다이나핏 매시브 라인. [사진 다이나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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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행이라지만 사실 이미 익숙한 디자인이다. 다만 런웨이가 아니라 스포츠 경기장에서 먼저 봤다. 운동 선수들이 벤치에 앉아 쉴 때, 혹은 단체로 이동 중 입는 외투를 떠올려 보라. 검정색에 투박한 일자 실루엣, 가로로 큼지막한 퀼팅이 잡힌, 바로 그 옷이다. 업계가 '롱 퍼퍼(Long Puffer)'라는 정식 패션 용어를 놔두고 '벤치 코트''벤치 다운'이라 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2017년엔 패딩을 취급하는 거의 모든 브랜드가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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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넘는 길이에 검정색이 가장 일반적인 벤치 다운 스타일이다. 여기에 등판에 브랜드 로고나 장식을 새겨 넣어 차별화 한다. [사진 ML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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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다운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길이다. 스포츠 브랜드 다이나핏의 김동억 마케팅 팀장은 "통상 롱패딩이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80㎝ 길이(남자 라지 기준)지만 올해 벤치다운은 길이로 승부한다"면서 "110㎝ 안팎이 주를 이루고 125㎝까지 가는 제품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40대 체격을 골고루 반영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는 남자용 100사이즈벤치 다운 길이가 지난해 100㎝에서 올해는 110㎝로 늘어났다. 여기에 디자인 특성상 이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품이 넉넉하다보니 아예 남녀 공용 모델을 내놓는 브랜드도 많다.
운동 선수들의 스포츠 용품이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소재나 디자인면에서도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다. 오리털 충전재를 보강하고, 윈드스토퍼 소재를 써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거나 목 부분을 올려 얼굴을 감싸는 디자인으로 보온성을 강화하는 제품이 주를 이룬다(헤드 푸퍼 다운, 빈폴 아웃도어 벤치코트 다운, MLB NY 레터링 메이저 벤치파카). 또 푸마의 ‘스트라이커 롱 다운재킷'처럼 컬러 선택의 폭을 넓히는가 하면 겉감의 봉제선을 없애 보다 세련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K2 포디엄 벤치 코트). 모자에 라쿤 퍼를 달아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디자인도 속속 등장했다(다이나핏매시브벤치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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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파의 '사이폰 벤치 다운'. 라미네이팅 소재를 적용해 보온성과 방풍 기능을 더했다. [사진 네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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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다운 인기에는 주목할 점이 있다. 그간 '등골 브레이커'나 '프리미엄 패딩'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이름과 가격이 주요 화제가 됐던 패딩 트렌드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는 점이다. 고가 제품이 유행하면 저가 브랜드들이 '미투 상품'을 만들어내던 흐름과는 맥이 다르다. 가격 역시 10만~20만원대가 주를 이루면서 업계에서는 '패딩의 민주화'를 이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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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리한나와 협업한 푸마의 '펜티 컬렉션'.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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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패딩 트렌드가 확 바뀐 이유는 뭘까. 일단 세계적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운동복이 일상복으로 활용되는 애슬레저, 힙합 스타일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패션, 크고 길게 입는 게 멋스러운 오버사이즈, 거기에 남녀 옷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까지, 최근 패션 키워드를 모두 지닌 것이 바로 벤치 다운이다. 헤드의 최우일 기획팀장은 "패션의 메가 트렌드에 올 겨울이 더 길고 추울 거라는 기상 예보가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결정적으로 불을 지핀 건 스타들의 옷차림이다. 과거 야외 촬영에서 잠깐씩 입었던 벤치 다운을 아예 출근복·일상복으로 애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지난해부터 나인뮤지스·AOA·소녀시대·세븐틴 등이 카메라가 몰리는 녹화장 주변은 물론 공항 패션으로까지 이 벤치 다운을 입고 나타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트와이스도 공항패션으로 벤치 다운을 택했다. 멤버 다수가 목이나 배꼽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 단지 '보온' 때문이 아닌 스타일 아이템으로 입었음을 보여줬다. 에잇세컨즈가 아이돌 그룹 위너와 협업을, 세븐틴이 다이나핏과 화보를 찍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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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일본 활동을 위해 출국하는 걸그룹 트와이스. 공항패션으로 올블랙 벤치다운을 입었다. [사진 ML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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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다운은 사실 멋내기의 정석이 잘 통하지 않는 옷이다. '신체 소멸 패션'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온 몸을 감싸버리기 때문에 실루엣을 살리는 '롱 앤 린(long and lean, 길고 가늘게)'의 원칙을 적용하기 힘들어서다. 대신 대충 걸쳐 입은 듯한 무심한 멋을 발휘하면서도 한 끗 다른 센스를 보여줘야 한다. 그간 파자마룩과 슬리퍼 패션 트렌드에서 나타난 놈코어룩(평범하면서도 센스있는 스타일)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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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다운을 멋스럽게 입고 싶을 땐 외투 안에 슬림한 라인을 유지한다. 또 지퍼를 열거나 어깨를 드러내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레깅스와 짝지은 나나, 몸에 붙은 드레스를 입은 선미, 어깨를 드러내 입은 켄달 제너, 지퍼를 길게 열어 다리를 노출시킨 아이린. [사진 푸마, 헤드, 핀터레스트, 프리마돈나] |
서수경 스타일리스트는 '막대사탕 라인'을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외투가 부피가 큰 만큼 다른 아이템들을 최대한 정반대로 유지하라는 이야기다. 미니스커트나 쇼트 팬츠를 입어 다리를 노출시키거나 딱 붙는 레깅스를 입는 식이다. 서 스타일리스트는 "아예 사이 하이 부츠(thigh high boots,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나 무릎 위로 올라오는 양말을 신는 것도 보온성과 멋을 동시에 살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 벤치 다운의 지퍼를 풀어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스타들의 화보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참고해도 좋다. 벤치 다운 안에 몸에 딱 붙는 일자 드레스를 입으면 여성스러우면서도 캐주얼 한 믹스 앤 매치가 되고, 외투 지퍼를 상반신만 닫아 다리를 그대로 노출시키면 투박함이 덜하다. 또 모델 켄달제너처럼 어깨가 드러나도록 젖혀 입으면 새로운 스타일링이 될 수 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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