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거침없는 사우디 빈살만…이번엔 숙청 인사 891조 자산 몰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우디發 중동정세 급변 조짐

매일경제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32)가 단행한 대규모 숙청의 파장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급등했고 사우디의 '오일머니'가 대규모로 투자된 글로벌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사우디 사태의 파장이 인근 레바논까지 번지며 중동발 정국 불안이 확산되는 등 정치적 파장도 만만찮다. 급기야 빈살만 왕세자가 숙청한 왕자와 기업인들에게서 자산 총 891조원을 몰수하기로 함에 따라 국제적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 소식통은 "사우디 정부가 부패 혐의를 단속해 8000억달러(약 891조3600억원) 상당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날 사우디 중앙은행은 검찰총장 요청에 따라 '용의자'들의 개인 은행계좌를 동결했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 중앙은행이 관련 조치로 개인·기업 계좌 1200여 개를 동결한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 4일 빈살만 왕세자는 반부패위원회를 열어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수십 명을 체포했다.

몰수한 자산은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 작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사촌형을 축출하고 왕세자직을 넘겨받은 빈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화두로 내세우고 건설·관광 등으로 산업을 다각화하는 '비전 2030'을 주도하고 있다. WSJ는 "정부는 압류한 자산을 국고에 귀속시킬 것이라고 거듭 밝혀왔다"고 보도했다.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글로벌 저유가 기조가 겹치면서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2014년 7300억달러(약 814조2000억원)에서 지난 8월 4876억달러(약 544조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사우디 당국이 체포한 왕자·기업인에 대해 국가 사업에 '기여'하는 대가로 사면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에 숨겨진 자산이 많아 귀속 작업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WSJ는 8000억달러라는 금액이 워낙 커 조금만 압류에 성공해도 사우디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빈살만 왕세자는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날 경제개발위원회를 열어 "국내 기업과 다국적 기업이 부패 수사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국제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부패위원회의 자산동결 조치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소유한 킹덤홀딩스 주식은 폭락했다. 킹덤홀딩스는 디즈니, 애플, GM 등 글로벌 기업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그의 자산 규모 또한 180억달러(약 20조원)나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산동결 조치가 시행돼 이들 기업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기업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우디 증시 대표 지수인 타다울 종합주가지수(TASI)는 7일 전날보다 2.17% 하락했다. 2026년 10월 만기의 사우디 채권 금리는 5월 이후 최고 수준인 3.53%까지 치솟았다.

정치적으로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단 사우디 숙청 후폭풍은 레바논으로 번졌다. 미국의 대(大)이란 적대정책에 편승해 사우디가 패권 행보를 노골화함에 따라 이란의 주요 거점인 레바논이 급격한 정정 불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4일 사우디를 방문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이유로 전격 사퇴했다. 하리리 총리는 "불행히도 이란이 우리 내정에 개입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레바논은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 마론파 기독교계가 권력을 균점하는 나라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두고 수니파와 시아파 대립이 심해졌고 사우디와 이란의 충돌에 휩쓸려 정국이 수년째 불안한 상황이다.

수니파인 하리리 총리의 사퇴는 레바논에 대한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실제로 타메르 알사반 사우디 걸프담당 장관은 6일 아랍권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헤즈볼라의 적대 행위 탓에 레바논 정부는 사우디에 선전포고를 한 국가로 취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가 레바논에 군사적 개입을 단행하면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기 때문에 국제 대리전 양상의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특히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빈살만 왕세자가 대이란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 내 긴장이 커지는 상황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5년 국방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예멘 내전에 개입해 이란과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아울러 최근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지도부와 회동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그의 호전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에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을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원주 기자 / 박의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