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사우디, '내부 숙청' 뒤 이란에 공세 강화…"전쟁 행위" 언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왕세자 '약점' 예멘 내전 책임 해소하려는 듯

연합뉴스

이란과 사우디의 대립[연합뉴스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가 2년 반 넘게 지지부진했던 예멘 내전의 고삐를 바짝 쥐고 있다.

4일(현지시간) 왕실 내 왕권 경쟁자와 반대파로 분류되는 왕자와 전·현직 장관 수십명을 부패 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 숙청해 '내우'를 해소한 직후 '외환'인 예멘 내전을 마무리 지으려는 듯 하다.

예멘 사태에 대해 사우디는 군사 개입을 완화하고 대화에 나서는 온건한 방법이 아닌 이란에 책임을 돌리고 압박 수위를 높이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계기는 4일 밤 수도 리야드 부근까지 접근한 예멘 반군 후티의 탄도미사일이었다. 후티는 그간 사우디를 겨냥해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번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날아왔다.

사우디는 파편을 조사한 결과 이 탄도미사일이 이란에서 공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즉시 이를 부인했다.

사우디 정부는 6일 후티를 '이란이 지배하는 테러조직'이라고 규정하면서 후티의 지도자를 비롯한 핵심 인사 40명에게 500만∼3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면서 같은 날 이란의 무기 유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예멘의 국경, 영공, 항구를 모두 봉쇄했다.

아랍권 동맹군의 명의로 낸 성명에서 사우디는 "이란은 대리자인 후티를 통해 직접 인접국과 중동, 전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겨냥해 공격했다. 이는 사우디에 대한 이란 정권의 전쟁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다"면서 이란을 정조준했다.

연합뉴스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자[SPA통신]



예멘 내전은 이번 숙청을 주도한 실세 왕자 모하마드 빈살만 제1왕위계승자(왕세자)의 취약점이다. 그는 2015년 1월 아버지가 국왕에 즉위하면서 30세 나이로 국방장관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예멘 내전에 개입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내전이 길어지면서 최악의 인도적 위기가 국제적으로 비판받았고, 자연스럽게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공교롭게 저유가와 예멘 내전 장기화가 겹쳐 사우디의 재정도 타격을 입었다.

개혁적이고 결단력이 있다는 호평 이면에 과격하고 호전적이며 외교에 서투르다는 혹평이 꼭 따라붙는 데엔 예멘 내전이 '논거'로 거론된다.

이란은 사우디와 달리 예멘 내전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아 책임에서 약간 비켜선 게 사실이다.

사우디는 예멘 내전을 '사우디-반군' 구도에서 '사우디-이란'으로 치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우군이 적은 이란을 예멘 내전의 장본인으로 부각한다면 자신에게 쏠린 비난을 희석할 수 있다.

사드 알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4일 하필 리야드에서 친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언급하면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결과적으로 이란의 '시아파 벨트'를 흔드는 '큰 그림'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버락 오바마 미 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을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것도 이런 '반(反)이란 드라이브'에 적당한 조건이다.

아울러 이란이라는 이견 없는 외부의 적과 선명하게 각을 세움으로써 여성 운전, 영화관 허용, 관광 개발 등 과감한 개혁 조치에 비판적인 보수적 종교계의 내부 반발도 무마할 수 있다.

hska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