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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우디 '왕자의 난']②왕좌의 게임 중심에 놓인 '수다이리',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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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난 6월 빈 살만 왕자를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는 자리에 모인 사우디 왕가의 왕자들 모습(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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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최근 왕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왕과 왕족들은 모두 '수다이리(Sudayri)'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다이리는 사우디의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의 10번째 왕비인 수다이리 왕비를 뜻하는 단어로 현대 사우디의 권력 핵심층을 이루고 있는 수다이리 왕비 소생의 7형제를 의미하는 단어다. 현 국왕인 살만 국왕 역시 수다이리 왕비의 여섯번째 아들이다.

원래 수다이리는 22명의 부인과 45명의 아들로 구성된 사우디 왕가에서 10번째 왕비로서 그대로 봐서는 왕위 쟁탈전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녀가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의 특별한 총애 속에서 아들을 무려 7명이나 낳으면서 그녀의 아들들은 '수다이리 세븐'이라 불리며 사우디 왕실에서 막강한 권한을 휘둘러왔다. 그녀는 원래 13세의 나이에 사우드 국왕의 8번째 왕비로 들어왔으나 이혼당했다가 다시 10번째 왕비로 들어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상당히 미인이고 총명했다고 알려져있다.

수다이리 가문 자체도 명문가다. 수다이리는 아라비아 반도 나즈드 지방의 토호인 수다이리 가문 출신이다. 사우디 건국의 토대가 된 와하비운동의 발상지이자 사우디 건국에도 상당한 지분을 소유한 명문가였다. 이런 배경은 수다이리 왕비의 7형제들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던 주요한 토대가 됐다.

그녀의 아들들은 제 4대 국왕인 칼리드 국왕의 집권을 도우면서 권력에 가까워졌다. 칼리드 국왕이 1982년, 즉위 6년만에 사망하고 수다이리 7형제 중 첫째인 파드 국왕이 5대 국왕으로 등극, 23년간이나 통치하면서 수다이리의 집권 기반은 다져졌다. 수다이리 형제들은 국방, 내무장관 등 요직을 맡으며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다.

뒤이어 6대 국왕은 수다이리 계열이 아닌 왕자였던 압둘라 국왕이 등극했으나 압둘라 국왕 역시 후임 왕세제로 수다이리 형제들을 임명해야했다. 압둘라 국왕이 10년간 통치하면서 수다이리의 넷째 아들이었던 나예프가 왕세제가 됐고, 나예프가 사망하자 다시 여섯째 아들인 살만이 왕세제가 됐다. 그가 바로 현 7대 국왕인 살만 국왕이다.

압둘라 국왕은 생전에 수다이리 형제들을 견제코자 배다른 동생인 무크린 왕자를 부왕세제로 임명했으나 그가 죽자마자 살만은 무크린 왕자를 퇴위시켰다. 대신 동복 형이자 자신보다 앞서 왕세제가 됐다 사망했던 나예프 왕자의 아들 빈 나예프를 왕세자로 앉혔다. 그러다 지난 6월에는 빈 나예프를 쫓아내고 자신의 아들인 빈 살만을 왕세자로 앉히면서 부자승계의 길을 열어놨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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