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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왜냐면] ‘어금니 아빠’ 사건 다시 명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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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성공회대 외래교수

이 사건은 ‘30대 남자 딸 친구를 살해 의혹’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기사 제목으로 처음 보도되었다. 초기에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개략적인 상황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기사 제목이 잡혔었다. 이후 수사가 시작되면서 피의자 이씨가 자신을 홍보할 때 썼던 ‘어금니 아빠’를 기사의 중심어로 사용했고 대중의 관심도 이씨의 불치병(‘거대 백악증’)에 집중되는 듯했다.

이씨의 살인 자백 후 이 사건은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으로 ‘명명’(命名)되었지만 ‘어금니 아빠’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는지 ‘여중생 살인사건’으로 기사화되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범죄 사건을 피해자 중심에서 기술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다. 첫째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고, 둘째 이 사건에 한정해 보면 ‘여중생’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대중에게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건은 ‘어금니 아빠 이○○ 사건’으로 보도되고 있다.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는 방침 이후 실명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씨의 여죄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태도는 다시 사건 초기로 돌아간 듯하다. 살인 혐의자 이씨의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성범죄 행적들이 구술되듯이 선정적인 기사 제목으로 보도되고 있다.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은 살인범이 자기 홍보에 썼던 ‘어금니 아빠’란 단어를 삭제하고 이 사건을 새롭게 ‘명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개인의 일탈적이고 병적이었던 성적 취향에서 시작된 가정 내 성폭력, 미성년자 성매수, 수면제를 먹인 상태에서 강간이 포함된 성폭행 범죄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언론이 ‘정의’(定議)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언론은 아직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 사건을 개인의 일탈 행위로 치부해선 안 되며 관계 부처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이후 경찰의 초동 대응을 포함한 실종 사건 대응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더 많은 실효성 있는 대책들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성도착증 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 관리 체계의 필요성, 강력범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의 적용, 기부금 모금에 대한 촘촘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적용하는 제도 마련 등에 대한 논의다. 또한 피의자 이씨는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미디어를 교활하게 잘 활용했다. 모금 이벤트를 벌이고 유튜브에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올리는 등 목적 달성을 위해 에스엔에스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살인사건을 통해 우리는 에스엔에스상의 세계가 얼마나 허구적이며 ‘이미지 조작’이 가능한 세계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결국 개개인들이 이러한 ‘허구’와 ‘조작’을 판단하고 식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제2, 제3의 이씨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무고한 여중생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애도하며 그 가족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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