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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레이더L] 사법부 독립, 집권세력이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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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이라며 재판 거부의 뜻을 밝혔다. 13일 자신의 구속이 연장된 데 대한 반발이다. 실제 19일 81회 공판에 안 나왔다. 변호인단은 "어떤 변론도 무의미하다"며 사임을 결정했다. 이는 무엇보다 사법정의의 부정이고 사법체계의 근간에 대한 도전이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사법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심각한 건 이런 일이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마치고 만기출소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추 대표와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닮아 있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불신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2015년 8월 한 전 총리의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선 13명 대법관의 의견이 모두 같았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국회에서 추 대표의 주장에 대해 "사법부 신뢰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사법 정의가 훼손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BBK투자자문 전 대표 김경준 씨가 만기출소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실소유 의혹에 대해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투자 유치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을 확정받았다. 2015년 11월 징역을 다 살고도 벌금 100억원을 내지 못해 일당 2000만원씩 5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돼 있었다. 그런데도 여권은 수사와 재판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수사 결과 발표문과 공소장, 판결문도 모두 공개돼 있다. 그 취재에 전념했던 기자들이 'BBK 취재파일'이라는 책까지 펴내 수사의 흐름과 세부를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확정된 사법 판단에 모두가 눈 감고 있는 것 같다. 무수한 의혹 보도가 명백한 오보로 드러나도 정정이나 사과는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2일 퇴임하면서도 고뇌를 내비쳤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판사들만 몸 바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구속연장 결정 전날 청와대가 나서서 법원을 압박하는 듯한 행태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할 일이다. 정적들에게서 찾겠다는 적폐의 기운이 제 안에도 퍼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할 때 가능할 일이다.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는 권력을 가진 이들부터 무겁게 생각해야 할 가치다.

[전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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