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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60년 전 ‘스푸트니크 쇼크’…로켓소년들 마음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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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과학] 박상준의 과거창

70세 미 우주공학자 최상혁 박사

신기전 발굴·복원 채연석 박사

숨어있는 감동 스토리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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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호 <학생과학>에 실린 한국브라운로케트(KBRC)클럽 소개글. 미국 로켓 개발의 핵심 인물이었던 폰 브라운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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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 되면 한국의 과학자들은 전국적인 강연 기부 행사를 벌인다. 바로 ‘10월의 하늘’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과학 콘텐츠를 직접 접할 기회가 적은 지방의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해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을 찾아가 강연을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주도로 2010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부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대표적인 재능기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왜 이름이 ‘10월의 하늘’일까? 이 명칭은 바로 미국의 호머 히컴이 쓴 자전적 소설 <10월의 하늘>(October Sky)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설은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와 함께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 바로 이 작품의 내용이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강연 기부의 동기를 제공한 것이다.

호머 히컴은 미국의 한 탄광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7년에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히컴은 그에 자극받아 로켓과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관련 서적들을 공부하고 작은 로켓을 만들어 발사하는 시험을 계속했다. 그러나 화재가 일어나는 등 말썽이 나자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구박이 쏟아졌다. 그 동네의 소년들은 고교만 졸업하면 아버지를 따라 탄광부가 되는 것이 거의 정해진 진로였으며, 히컴 역시 아버지로부터 그런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히컴은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해서 마침내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우주과학자가 되었다.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감동적인 ‘10월의 하늘’과 같은 스토리는 사실 우리나라에도 있다. 1957년의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과학소년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준 사건이었다. 우주과학과 관련된 정보나 자료를 접하는 환경에서 미국의 탄광촌보다 나을 것이 없었던 한국의 소년들도 로켓과학자를 꿈꾸며 서로 모여서 로켓클럽을 결성하고 발사 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실제로 나사의 과학자가 된 사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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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우주로케트클럽은 1971년에 결성된 아마추어 로켓제작자 클럽이다. 항공우주연구원장을 지낸 채연석 박사가 대학생 때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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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인물이 최상혁 박사이다. 나사의 수석 연구위원인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 나사에서만 40년 가까이 재직하면서 ‘최고 과학자상’ 등 여러 상을 받으며 업적을 인정받은 최 박사는 초등학생 시절 미군부대에서 로켓 발사 영상을 본 뒤 그 매력에 빠졌다. 고교생 때는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모아 로켓을 만들었다. 설계는 외국 잡지를 보고 했다. 인하대학교에 진학한 다음엔 동료들과 3단 로켓을 만들어 1964년에 소래 포구에서 발사 시험을 했는데, 이 소식은 당시 ‘대한뉴스’에 보도되었으며 지금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e영상역사관’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학생 시절 로켓실험 도중 한쪽 손을 잃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계속 의지를 불태워 미국에 유학을 가 마침내 우주과학자의 꿈을 실현시켰으며, 나사의 랭글리연구소에서 장기간 재직하면서 전자파를 이용한 에너지 전달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올렸다.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을 지내면서 국산 로켓 발사체의 개발에 큰 기여를 한 채연석 박사 역시 1세대 로켓소년 출신이다. 그는 1971년에 ‘한국우주로케트클럽’을 결성하여 로켓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고, 1972년에는 <로케트와 우주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가 <학생과학>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것으로, 국내 필자가 쓴 사실상 최초의 로켓과 우주과학 전문 대중교양서이다. 이 모든 활동은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이룬 일이다. 그 뒤 조선시대의 로켓 무기였던 신기전을 발굴, 복원하여 발사 실험까지 성공시킨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고교생 때 로켓 실험을 하다 고막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로켓소년’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과학자의 휴먼스토리를 문예창작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국산 인공위성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별 1호와 얼룩소>는 기대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가속 발달이 점점 우리의 일상에서 의미심장한 비중을 차지하는 현시대에 그러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공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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