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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정윤아의 컬렉터가 사랑한 세기의 작품들] 생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 성행위 장면 촬영해 인화한 것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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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하나씩 있다. 둘 다 꼭 먹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인가? 좋아하는 것부터 먹는 타입, 아니면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는 타입? 이유가 뭐든 간에 먼저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당신, ‘조금 이따’보다는 ‘지금 당장’이 중요한 당신이라면 제프 쿤스(Jeff Koons, 62)와 통하는 바가 있다. 작품을 통해 초지일관 그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지금’을 즐기라는 것. 그리고 삶이 고통스럽고 때로 당신을 속일지라도 최대한 그것을 탐닉하라는 것이다.

쿤스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로 인해 쿤스는 흔히 뼛속까지 상업적인 작가로 이해되곤 한다. 그런데 정작 그가 금융맨으로 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금 마련을 통해서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생계 때문에 판매에 연연하면서 주눅 드는 일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작업하고 싶었다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시장에 의존하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던 그가 ‘생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가 됐다는 것이 말이다. 무엇이 그를 미국의 최고 인기 작가로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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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엘비스(Triple Elvis)’, 2009년. ‘뽀빠이’ 연작에 속하는 작품으로 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유화 작품이다. 2015년 5월 13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860만달러(약 97억원)에 낙찰돼 쿤스의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 낙찰가를 기록했다.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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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는 어려서부터 거장들의 모작을 그려 팔 정도로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를 뉴욕 미술계의 스타 작가로 부각시켜준 것은 그림이 아닌 조각이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상품을 조각처럼 연출한 작품! 미국 유명 브랜드 진공청소기를 조명과 함께 다양하게 진열한 ‘새로움(The New)’ 연작(1979~1987년)이 그것이다. 1985년에는 ‘평형(Equilibrium)’ 연작을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농구공을 수조에 절묘하게 넣은 ‘탱크(Tank)’가 특히 이목을 끌었다. 이 작품은 훗날 영국의 젊은 작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s)의 기수, 데미안 허스트의 ‘수족관’ 연작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유명세를 얻는다.

쿤스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다져준 것은 1986년 발표한 ‘조각상들(Statuary)’ 연작이다. 이번에는 풍선이나 기념품 같은 평범한 상품들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공들여 제작했다. 이어서 ‘진부함(Banality, 1988년)’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연작에서는 싸구려 도자기 인형들을 사람 크기로 확대 제작한다. 이 시기에 발표된 키치(Kitsch) 취향의 도자기 인형 조각 가운데 ‘핑크 팬더(Pink Panther)’가 높은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에 낙찰(약 180만달러(약 20억원), 1999년 11월 16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쿤스의 경매 낙찰가 고공행진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등장 이래 승승장구해온 그지만, 늘 상반된 평가가 따라다니곤 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명석한 예술가 또는 그저 손 안 대고 코 푸는 영악한 사기꾼. 이런 논란에 기름을 들이부은 게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1989~1991년)’이다. 포르노 스타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특이한 경력의 일로나 스톨러와의 성행위 장면을 촬영하고, 그것을 캔버스나 인화지에 출력하거나 유리·대리석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제작한 작품이다. ‘치치올리나’라는 예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는 그렇다 쳐도, 쿤스의 성기까지 적나라하게 노출된 포르노 이미지들! 이것은 포르노인가 예술인가. 대중들의 호기심으로 전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미술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쿤스의 커리어가 완전히 끝났다고 여겼다. 이유인즉, 가도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쿤스의 미술 인생이 끝났을까? 그럴 리 만무하다. 이 악명 높은 연작 때문에 미술계의 왕따가 된 그는 바로 이듬해, 수만 송이 생화와 잔디로 장식된 초대형 강아지 조각을 선보이면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에도 어린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주제로 한 ‘축하(Celebration)’ ‘쉬운 재미(Easy Fun)’ ‘뽀빠이(Popeye)’ 등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최근에도 운동으로 잘 다듬어진 몸매를 뽐낸 전라의 잡지 화보를 비롯해 세계 유수 미술관 회고전 등 예술과 상업을 넘나들며 전천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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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가슴에 얹은 손(Hand on Breast)’, 1990년. ‘메이드 인 헤븐’ 연작 중 한 점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오일 잉크로 출력한 작품. 2015년 11월 9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140만달러(약 16억원)에 낙찰됐다.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➋ ‘풍선 강아지(Balloon Dog)’, 1994~2000년.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주제로 한 ‘축하’ 연작에 속하는 작품. 강아지 모양의 작은 풍선을 정교한 스테인리스 스틸 대형 조각으로 탈바꿈시켰다. 2013년 11월 12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5800만달러(약 660억원)에 낙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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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와 영악한 사기꾼. 도대체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현대미술에 대해 불신이 있다면, 당신은 단연 그를 사기꾼이라 말하고 싶을 것이다. 사실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대형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조성해 원하는 대로 맘껏 작품을 만들고는 막상 돈을 댄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람을 홀려서 간을 빼먹는, 꼬리가 열 개 달린 여우처럼 말이다.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를 지원한 후 큰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소나밴드 갤러리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가 왜 계속 홀리듯이 그의 작업을 후원하는 것일까?

편견 없이 쿤스의 작품을 보면 무엇이 사람들을 홀리는지 알 수 있다.

첫째, 높은 완성도다. 토끼 모양 풍선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섬세하게 옮겨놓은 작품 ‘토끼(Rabbit, 1986년)’를 보자. 곧 날아갈 것처럼 보이던 풍선이 가까이에서 살피니 무거운 재질로 돼 있다. 게다가 이 토끼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나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가벼워 보이는데 무겁고, 누군가 하고 보니 나 자신이다. 기묘하기 짝이 없다. ‘축하’ 연작에서 선보인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조각들도 초현실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 감탄을 자아내고 이내 소유 욕망을 자극한다. 남의 돈을 썼든 남이 했든 어쨌든 그는 누구보다 완성도를 추구한다. 완성도는 예술가의 미덕이 아닌가.

둘째, 20여개가 넘는 다양한 연작들을 관통하는 꿋꿋한 일관성이다. 우선 주제의 일관성을 들 수 있다. 늘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관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급한다는 점이다. 단, 애매모호한 태도로 말하기에 비판인지 찬양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메시지도 절대 잊지 않는다. 더불어 육체적 쾌감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의 하나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애쓴다. 또한, 그의 미술에는 싸구려 키치 감성이라는 취향의 일관성이 흐른다. 풍선, 농구공, 기념품 등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용품을 누구나 탐내는 미술품으로 변신시키는 쿤스는 키치 미술의 귀재다.

무엇보다 쿤스의 가장 강력한 힘은 진정성에 있다. 뺀질거리는 듯하고 느끼하기 짝이 없는 작품에서 전해지는 반전의 진정성. 그는 레디메이드를 발명한 뒤샹과 이를 미학적으로 응용한 워홀의 노선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작품이 곧 자신이라는 나름의 진정성을 담아 청출어람을 꾀한다. ‘메이드 인 헤븐’ 연작 후, 치치올리나와 결혼한 사실을 보라. 작품 콘셉트의 완성 때문인지 정말 사랑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진정성이 있다.

기름진 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이 싫을 수 있다. 하지만 평론가들이 인정하든 말든, 반전 매력의 쿤스는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듯 보인다.

매경이코노미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0호 (2017.10.25~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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