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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무비클릭] 블레이드 러너 2049 | 전작 넘는 명품 SF, 인간 정체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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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SF, 액션/ 드니 빌뇌브 감독/ 163분/ 15세 관람가/ 10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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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는 반드시 봐야 할 SF 영화 추천 목록에 매번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다. ‘리플리컨트’라고 불리는 복제인간이 보편화된 미래를 시점으로 한 이 작품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의 오랜 통념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블레이드 러너’를 다시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전작의 아성에 오히려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한 이유기도 하다. 그것이 시퀄(속편)이든, 프리퀄이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전작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드니 빌뇌브 감독은 마치 소설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듯 전작을 깊이 있게 재해석하고 섬세하게 재가공해냈다. 전작의 주제를 뒤집거나 바꾸는 게 아니라 이어받으면서 훨씬 더 심도 있는 질문의 수준까지 끌고 가기 때문이다.

때는 1982년으로부터 60여년이나 흐른 2049년, 리플리컨트들의 자아 정체성 고민을 복제 사업 실패로 여긴 회사는 다시 한 번 복제인간 사업에 도전한다. 다만 이번엔 인간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복제인간이며 아예 기계들처럼 일련번호로 불리지만 아무런 거부 반응도 없는, 그런 복제인간들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복제인간 K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껍데기 인간(Skinner)이라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그런 비아냥에 K는 반응하지 않는다. 멸칭에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 그것 역시 자존감을 가진 인간의 특권이자 특성 중 하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기계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 K는 어느 날과 다름없이 도망간 구세대 리플리컨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묘한 상자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자연적으로 탄생한 사람으로 치자면 그 상자는 유골함이었고, 그 유골함에 지금껏 이루기 어려웠던 ‘기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자연 생식이 불가능한 어떤 여성 리플리컨트가 출산을 하던 중 숨졌고, 이는 곧 다른 ‘기적’의 탄생을 암시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워낙 오이디푸스적 서사에 예민하고 유능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했던 ‘그을린 사랑’이나 ‘컨택트’는 오이디푸스적 발견으로 이뤄진 고전적 비장미와 비극미가 가득한 작품이다. 이번에도 그런 솜씨를 발휘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민한 관객들이 짐작하고 있는 오이디푸스적 반전의 진짜 의미를 질문하는 데에 이른다. 과연 생의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 그러니까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질문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질문이 바로 사물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삶을 존재라는 무거운 단어에 걸맞도록 바꾸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과거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레이첼(숀 영 분)이나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는 전편에 대한 절대적 ‘의존’이라기보다는 ‘계승’을 위한 의미 있는 오마주이자 연결고리가 돼준다. 진화한 AI 조이의 모습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경찰 K를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건조하면서도 무료한 표정 속의 감정 변화는 놀랍고 감동적이다.

언제나 느끼는 놀라움이지만 훌륭한 SF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결국 사람다움에 대한 윤리와 도덕과 만난다. 그 고민의 끝에는 인간, 삶, 죽음에 대한 존중과 고민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색적 여운이 있는 진짜 SF다.

매경이코노미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0호 (2017.10.25~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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