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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빈(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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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殯)

바람의 널을 찢는 발이 있다네
천오백 년 전 정촌고분
마한(馬韓)의 수장이라던
망자의 발 뼈에서 발견된
빈, 파리 번데기의 시간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발이 있다네
용장식 금신을 신고



허공에
도려낸 입들이
알 수 없는 번식처럼
마지막 별빛을 빨아들이고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발이 있다네

―문혜진(1976~ )
('시와세계', 2017년 여름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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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殯)'이란 관에 넣은 시신을 매장하기 전 일정한 곳에 안치하는 장례 절차다. 삼한시대에는 "집안에 죽은 자를 '빈'하고 3년이 지나면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졸(卒)하면 염(殮)하고 빈(殯)하고 장(葬)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 죽은 자와 산 자와 함께 공존했던 습속들이다.

최근, 1500년 전에 죽은 망자의 '빈 객실'이 열렸다. 망자가 신었던 금(金)신의 흙에서 발뒤꿈치 뼛조각과 뒤섞인 파리 번데기 껍질이 발견되었다.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망자의 발을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살아 있는 파리의 발이 움켜쥐고, 알을 낳았다. 말 그대로의 무덤이자 요람에서 '바람의 널을 찢는 발'들이다. 맨 나중에 나와 살아 내내 발발거린 발은 죽어서도 맨 나중에 발인(發靷)되나 보다. 제자 가섭에게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주었다는 붓다의 발을 헤아려본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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