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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국경제 생태계, 기득권에 골병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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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정부의 개입이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편향성으로 시장을 왜곡시키면 경제 생태계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기형적 형태로 변질된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고장 난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지 않으면 한국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보다 더 심한 경기 침체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김정식 연세대 교수)

지난 12년간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124조원을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은 왜 갈수록 떨어지는 것일까.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창업 지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왜 치킨집 창업만 늘어나는 것일까.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저출산과 저성장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병폐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생태계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민간 연구기관인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리는 한국경제학회 정책세미나에서 발표한다.

소멸과 재생성 가로막는 정치 시스템

자연 생태계는 생산자(식물)와 소비자(동물), 분해자(박테리아)라는 세 주체의 기능을 통해 생성-성장-소멸이라는 순환 과정을 밟는다. 경제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생산자, 가계가 소비자, 금융과 복지가 분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동식물이 노화돼 소멸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분해자 역할을 하듯, 실물경제에서는 정부의 복지정책과 금융이 소멸과 재생성을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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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경제에선 거대한 기득권 구조 때문에 이런 자정(自淨) 기능이 약화됐다고 니어재단은 진단했다. 정치권과 관료, 재벌, 대기업 노조 등 기득권 세력이 담합을 통해 만들어낸 불공정거래와 갑질 때문에 혁신적인 기업이 새로 탄생하지 못하고, 반대로 죽어야 할 시장의 패자도 버젓이 수명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생태계 순환을 촉진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표를 의식해 도태돼야 할 기업을 보호해준다"며 "결국 좀비화된 한계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의 생성을 가로막는다"고 말했다.

니어재단은 ▲기득권의 고착화 ▲기득권 세력 간의 공생 관계 ▲변화를 거부하는 경직성 ▲근본적 처방보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단기주의 ▲위험 부담을 기피하는 현상 유지 증후군 등을 한국 경제 생태계의 5대 문제점으로 꼽았다.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 경제, 소득주도 성장 성공 가능성 낮아

니어재단은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기득권 혁파와 함께 과도한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정부 개입이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편향성으로 시장을 왜곡시키면 경제 생태계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기형적 형태로 변질된다"며 "경제의 풍성한 생태 숲을 만드는 데는 정치사회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처럼 정권의 '성향'이 반영된 경제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자들은 평가했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이 필수적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정책은 구조 개혁의 필요성 자체를 외면하고 있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노동분배율 제고를 통해 총수요 구조를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수출이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여 경기가 장기간 상승 국면을 유지해주지 않는 한 소득주도 성장은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했다.

경제 생태계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장차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일본은 경기 침체가 지속돼도 외환 위기 가능성이 낮고, 고성장기에 연금과 복지 체제를 어느 정도 구축했기 때문에 노후 대비에 큰 문제가 없지만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노후 대비도 안 돼 있다"며 "한국이 일본보다 더 심한 경기 침체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정 이사장을 비롯해 금융·산업·과학기술·중소기업·노동·복지·교육·인구 등을 전공한 경제학자 13명이 참여한다. 연구 내용은 다음 달 책으로도 발간할 예정이다.



나지홍 기자;최규민 기자(q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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