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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성에 대한 편견을 꼬집는 두 편의 청소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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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좋아하고 있어·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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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연극 <좋아하고 있어>.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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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깜빡. 고장 난 전구가 깜빡인다.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청소년극 <좋아하고 있어>는 ‘전구 끼우는 법’ 읽기로 시작해, 전구를 갈아 끼우기로 끝난다. 여기서 전구는 상징이다. 보는 이에 따라 동성 간 사랑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짐작했듯, <좋아하고 있어>는 청소년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혼자 자취하는 고2 혜주는 밴드 선배인 고3 소희와 동성연인 사이다. 또한 지은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다. 다만 지은에게도 선배와의 관계만큼은 비밀이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혜주가 불콰하게 취했던 밤, 밴드부원들은 지은에게 소희가 동성애자임을 폭로하고, 소희와 혜주의 관계에 대해 추궁한다. 그 밤의 사건을 전하는 지은의 대사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보수적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

“김재현은 밴드실 들어가기 싫대. 이선우는 악보 더러워서 만지기도 싫대. 더 말해줄까? 왜 김소희 때문에 우리가 싸워야 해? 나, 아니라 그랬어. 근데 애들이 자꾸 물어보잖아.”

감전이 두려워 고장난 전구를 방치했던 혜주는 결국 혼자 힘으로 전구를 갈아 끼운다. 새 전구도 얼마가지 않아 다시 깜빡거리지만. 황나영 작가는 여고생들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해 활자화했다. 김미수, 김별, 김민주 세 배우는 고등학생들 속에 섞여도 위화감 없을 실감나는 연기로 <좋아하고 있어>를 좋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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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연극 <투엑스라지(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극단 돌파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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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청소년극 <투엑스라지(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또한 고2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다. 주인공은 몸에 짝 달라붙는 여성용 레오타드를 입는 게 취미인 준호.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 게 화근이 되었다.

하필 같은 반 왕따 희주가 사진을 발견해 교내 누리집 게시판에 올린 것. 모자이크 처리해 얼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정체가 탄로날 경우 조리돌림 당할 건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의상도착증이라 단정하고, 소돔과 고모라로 가는 길이라 비난한다. 친구들의 대사다.

“백퍼센트 장담하는데, 이 새끼 팬티스타킹이랑 티(T)팬티 같은 거 입고 셀카질 했을 거야.” “이런 게 다 동성애 초기 단계야. 여자 옷 보면 막 흥분하고 여자 속옷 입으면서 행복해하는 애들 보면, 나중에 다 게이 짓 하고 성전환하고. 우리 부모님부터 목사님, 전도사님, 집사님, 권사님까지 다 그러더라. 이딴 걸 개취로 인정하면 대한민국 소돔과 고모라 돼.”

<투엑스라지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은 이렇듯 여성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또래집단으로부터 공격받는 청소년의 문제를 건드린다. 박찬규 작가는 여기에 덧붙여 부모들의 경제력으로 계급을 나누는 문화까지 은근히 꼬집는다. 전인철 연출은 큐브처럼 공간을 구획해 극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청소년극이라 불리지만, 두 편 모두 어른을 각성시키는 작품들이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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