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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고만장’ 일본이 내려다본 ‘식민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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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감도,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전

일제어용 작가들이 그린 조선땅

제국주의의 지배욕·시선 드러나

한양대박물관에 20여점 내걸려


한겨레

1929년 경성 박람회 개최를 맞아 제작된 관광안내조감도인 ‘조선박람회도회’(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박람회가 열리는 경복궁과 경성 도심이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오른쪽 구석에 경성 북서쪽과 한강 이남의 땅 모습과 도시들을 옹색한 구도로 그려 넣었다. 경성을 비롯한 반도 일대가 모두 일제의 눈길 아래 지배되고 있음을 은연중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림을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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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鳥瞰圖)는 ‘날아가는 새의 눈으로 내려다보고 그린 그림’이다. 관광안내도나 건축물 완공도에서 보이듯, 공중에서 땅 위의 실제 지형과 건물들을 바라보는 ‘조감’의 개념은 미술사에서 옛적부터 쓰였다. 중세 중국 송나라 때부터 비롯된 대관산수나 18세기 조선의 거장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를 비롯한 진경산수화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근대기엔 서구와 일본 등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자신들의 점유욕을 충족시키는 시각적 도구로 변질된다. 제국주의 본국 곳곳의 발전한 모습이나 점령한 식민지 땅의 경관을 높고 전능한 위치에서 이리저리 뒤틀어 훑어보는 기괴한 조감도가 출현한 것이다.

서울 행당동 한양대박물관에 펼쳐진 기획전 ‘조감도, 제국의 야심을 그리다’는 제국주의 시대 변질된 근대 조감도의 가까운 과거를 투시한다. 일제강점기 관광 안내, 행정 용도로 그려 활용했던 독특한 화법의 조감도들을 처음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관광의 고도 수원’, ‘조선박람회도회’, ‘동진수리조합사업상황도’ 등 조선과 대만, 중국 본토의 여러 지역 경관을 묘사한 조감도 실물 20여점을 만나게 된다. 대상이 되는 특정 지역의 단면을 조감해 그려냈을 뿐 아니라 그 너머의 실제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과장해 표현해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런 그림 얼개는 요시다 하쓰사부로, 마에다 고에이 등 당시 일제의 어용 조감도 작가들이 일제 위정자들의 의뢰를 받아 다량 제작했던 특유의 양식적 구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1929년 제작된 ‘조선박람회도회’다. 이 조감도를 보면 박람회가 열린 경복궁과 총독부 일대의 경성 도심이 화면의 중심부를 채우고 있지만, 한강 아래와 서울 북동쪽은 땅을 매우 좁게 왜곡해 원산, 금강산, 대구, 경주, 부산까지 한 화폭에 집어넣고 있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과 일본인들이 새로운 영토로 확보된 조선 땅과 도시들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표상물이라는 점에서 출품작들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전시는 이와 더불어 식민지 조감도의 확산과 유통 배경, 당대 일본화풍이 미친 영향, 대표적인 조감도 작가였던 요시다 하쓰사부로의 행적 등도 세부 설명을 곁들여 살펴본다.

기획진을 이끈 이 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연구실의 한동수 교수는 “오늘날 보는 일반 조감도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 담긴 일제강점기 조감도들의 성격과 특징에 주목해 당대 식민지 시각문화에 작용한 제국주의의 숨은 욕망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11월3일까지. (02)2220-139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한양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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