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드러내는 노골적 막말이
침묵보단 좋다는 게 민주주의
지지자 환호만 꾀하는 막말은
정치공동체 전체를 멍들게 해
김환영 논설위원 |
오웰의 『정치와 영어』(1946)는 중국에서 ‘간명영어(簡明英語)’로 번역하는 ‘평이한 영어(Plain English)’의 핵심 문헌이다. ‘평이한 영어’는 이해하기 쉬운 영어. 어려운 단어는 가급적 쓰지 않으며 명료하고 짧은 영어다.
언어의 세계는 오웰의 주장을 수용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글이 어려웠다. 이제는 대부분의 매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지향한다.
세계적인 명품 매체인 ‘이코노미스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정치와 영어』의 정신이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출간한 『스타일 가이드』는 “이코노미스트가 경쟁지들을 지속적으로 능가할 수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분석의 질과 글쓰기의 질이다.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생각이 명료해야 글도 명료하다.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한 다음, 최대한 간단하게 표현하라”며 다음과 같이 오웰의 『정치와 영어』를 인용하고 있다.
“직유·은유 등 수사적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 짧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으면 긴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잘라 낼 수 있는 단어는 잘라 내라. 능동태를 쓸 수 있으면 수동태를 쓰지 말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말이 있으면 외국어·과학용어·전문용어를 쓰지 말라. 이러한 규칙을 지키면 명백히 귀에 거슬리는 글을 쓰게 된다고 예상되면, 차라리 규칙을 깨라.”
Big Picture 10/21 |
‘막말 정치’는 민주정치 대중화의 산물이다. 일사불란한 권위주의 체제라면 ‘막말 정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준비된 원고를 정치 행사에서 읽으면 된다. 막말은 민주주의의 잣대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민주주의를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막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국민·유권자는 대통령에게도 막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다. 민주국가이기 때문이다.
막말의 ‘정치적 순기능’을 대표하는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족쇄 때문에 감히 배출할 수 없었던 불만을 터트리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의 아픔과 분노와 절망에 대해 너무나 몰랐다는 게 지난 미 대선 결과가 드러냈다. 침묵은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막말 정치’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 분열을 부추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체제와 달리 분열이 당연하다고 보고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체제다.
‘막말 정치’에는 이런저런 순기능도 있지만, 뭐든지 과유불급이다. ‘막말 정치’가 건강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막말 정치’는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부추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르는 정치의 품질 저하를 초래한다. 그 종착점은 정치권 전체의 공멸일 수도 있다. 지지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전체를 멍들게 할 것인가.
‘사이다’ 막말로 다음 선거 당선을 꿈꾸는 정치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인용문은 미국 신학자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1810~1888)가 한 이 말이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경세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막말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선거에서 국민·유권자가 막말 정치인을 떨어뜨리면 된다. 또 점잖게 꾸짖으며 멋있게 한 방 먹이는 정치인이 많이 나와 막말 정치인들을 압도해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막말을 하더라도 민생을 위한 막말, 정책을 위한 막말을 하는 정치인은 나름 훌륭한 정치인이 아닐까. 그들은 ‘막말 좀 하면 어때, 민생 정치 잘하는데’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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