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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머잖아 ‘외박’할 조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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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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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남지은의 조카덕후감

11. ‘독립’이 시작됐다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광대뼈가 욱신댄다. 자는데 누군가 쳤다. 누구냐! 범인은 너다. 조카, 이 녀석!

열흘간의 추석 연휴. 조카와 오랫동안 있으면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얌전하게 생긴 아이, 생각보다 잠버릇이 거칠었다. 그동안은 같이 지내더라도 조카는 동생네와 잤으니 잠버릇은 구체적으로 몰랐다. 풍문으로는 들었다. “언니, 대현이 잠버릇 장난 아니에요. 방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요.”(올케)

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돌면서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고, 급기야 뒤통수로 광대를 쳤다. “언니, 무서웠죠?” 응, 너무 무서웠다. 광대를 한번 맞고 나니 또 맞을까,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조카와 최대한 떨어져 벽에 꼭 붙어 밤을 지새웠다.

비록 ‘공포의 밤’이 됐지만, 조카의 ‘독립’은 감격스러웠다. 이번 연휴, 조카 인생 6년 동안 가장 긴 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홀로서기의 징조를 목격했다. 잠은 꼭 엄마 아빠와 자려고 했던 아이는 고모와 자겠다며 연휴 첫날부터 노래를 불렀다. “대현이, 고모랑 잘래?” “응, 고모랑 잘래!” 설마설마했다. 광대 맞은 후유증이 너무 커서 이후 은근슬쩍 피하긴 했지만(미안해 대현아) 엄마 아빠가 없으면 안 됐던 아이는 변했다. 혼자서 사촌형 민기의 집에서 자는 등 인생 첫 ‘외박’도 했다.

“민기 집에 장난감이 많으니 순순히 따라간 거겠지.” 자신의 손을 놓기 시작하는 아이가 아쉬운지 동생은 애써 이유를 붙여댔지만 글쎄, 아닌 듯하다. 연휴 끝자락 장난감 하나 없는 고모 집에 와서는 눌러앉을 기세로 침대에서 뛰고 소파에 눕고 마치 자기 집처럼 돌아다녔으니까. 고모의 ‘핫 아이템’인 해먹에 누워서는 급기야 “나 여기서 잘래. 엄마 아빠는 집에 가!”라는 말까지 터져 나왔다. 동생과 올케의 놀란 표정이란. 올케의 안 된다는 말에 아이는 세상 서러워라, 펑펑 울었다.

아이를 구슬려 보내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홀로서기가 시작되는구나! 우리 모두 만감이 교차했다. 더불어 정말 자고 갔으면 어쨌을까 싶기도 했다. 혼자 사는 싱글 여성의 집엔 조카를 위한 어떤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다. 텅 빈 냉장고에는 조카 먹거리도 없고, 조카 피부를 뽀송뽀송하게 해줄 자극 없는 로션도 없고,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보호해줄 세상 뽀송한 이불도 찾아보기 힘들다. ‘응가’라도 보면 어쩌나. 아기 변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돌고 도는 아이를 침대에 재울 수도 없고, 바닥에 재우자니 돌고 돌다 가구 모서리 등에 부딪힐까 불안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 손을 놓기 시작하는, 그래서 ‘외박’도 거뜬한 조카의 홀로서기를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 전용 로션도 구비해놓고 조카의 안전을 위한 보호막도 사놓고, 아기 변기도 준비해놓고. 언제든 불쑥 조카가 “엄마 아빠, 가. 고모 집에서 잘래”라고 말하더라도 흔쾌히 “그래”라고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대현아, 고모 준비 잘해놓을 테니 언제든 자고 가. 대신 광대는 건드리지 말고.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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