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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여적]돌아온 수사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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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순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죽 했으면 우는 아이 달래는 방법이 ‘순사 온다’는 말이었을까.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독립 운동가를 탄압했던 순사는 해방 후 경찰로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1971년 3월 첫 전파를 탄 MBC <수사반장>은 일제강점기 순사와 독재정권의 경찰이 갖고 있는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수사반장>은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등에 비하면 구성도 엉성하고 줄거리도 단순했지만 그 시절 최고의 추리물이었다. 시청률이 70%에 이르렀고 1989년 10월까지 880편이나 방영됐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우수에 찬 시선으로 육감과 추리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박반장(최불암 분)은 시민들의 우상이었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는 박반장의 대사는 1970~1980년대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에 범죄의 뿌리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철학이 있고 시대를 읽을 줄 아는 경찰이었다.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2회 경찰의날 기념식에 수사반장 최불암씨가 등장했다. 경찰의 생일잔치에 30년 전 종영된 드라마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온 것이다. 빠른 비트의 수사반장 시그널 음악을 이용한 테마곡도 연주됐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면 지금의 경찰이 위기라는 방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경찰은 ‘수사권 독립’ 숙원을 이룰 기회를 맞았다. 이날 기념식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사건 초동수사 부실과 허위 보고 의혹을 비롯해 각종 성 비위, 전직 고위 경찰 독직 사건 등으로 경찰은 시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검찰 통제를 위해 수사권 조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시민의 기본권 신장을 위한 것이다. 검사의 지휘와 감시를 받는 경찰관의 권위를 높여주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수사반장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면서도 늘 고뇌하고 안타까워했다. 죄를 미워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뇌물을 받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경찰은 지금 어떤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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