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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석유화학 호황 이끈 ‘빅4’ 성공비결 LG·롯데·SK·한화, 선제적 투자 결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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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업계가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진입했다. 저유가와 석유화학 제품 수요 증가로 국내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뜻밖의 ‘실적 황금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LG, 롯데, SK, 한화 등 ‘빅4’ 업체들이 올 상반기 기록한 영업이익만 5조원이 훌쩍 넘는다. 한국 경제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석유화학 산업이 업황을 많이 탄다고는 하지만, 대박 실적의 비결이 외부적인 요인에만 있지는 않을 터. 최근 석유화학 업계의 결실은 불황기에도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투자와 M&A, 사업 다각화 노력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경이코노미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을 통해 자사 약점을 보완한다. 사진은 SK이노베이션이 중국 시노펙과 합작해 세운 중국 우한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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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고부가 제품 중심 전환 ‘신의 한 수’

LG화학은 올 상반기 매출 12조8688억원, 영업이익 1조5238억원을 기록했다. 최대 영업이익을 6년 만에 경신한 데다, 상반기 매출이 처음으로 12조원을 돌파해 겹경사를 맞았다. “기초소재 부문의 2분기 기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비롯해 전지 부문의 흑자전환, 정보전자소재 부문, 생명과학 부문, 자회사 팜한농 등 모든 사업 부문에서 고른 실적 개선이 호실적의 기반이 됐다.” 정호영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설명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는 LG화학의 특장점이다. 사업 분야가 다변화된 덕분에 LG화학은 늘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 중이다. 최근 6년간 영업이익이 가장 낮았던 2014년에도 1조3108억원을 벌어들여, 당시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과 대비됐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 이외에도 전지 부문이 6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비료와 신약을 만드는 생명과학 부문도 제미글로(당뇨 신약) 등 주요 전략 제품의 성장으로 영업이익이 늘었다”며 “전통 석유화학 이외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범용 제품 비중이 경쟁사 대비 낮은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경쟁사가 범용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반면, LG화학의 범용 제품 비중은 40%로 절반에 못 미친다. 폴리에틸렌(PE) 등 범용 제품은 북미 지역 에탄분해설비(ECC) 증설로 내년 1분기까지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LG화학은 지난 수년간 석유화학 제품 포트폴리오를 스페셜티(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꾸준히 재편해와 이런 우려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저유가로 경쟁사들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올 2분기에 LG화학이 선방한 것도 스페셜티에 투자해온 성과 덕분이란 평가다.

실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석유화학 업계 살길은 스페셜티뿐”이라며 여수 공장에서 생산하는 PE 제품의 90% 이상, ABS(내충격성이 뛰어나고 성형성이 좋은 플라스틱) 제품의 80% 이상을 스페셜티로 전환했다. 국내 최초로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갖춘 특화 제품 ‘엘라스토머(자동차용 범퍼나 건물 차음재 등에 사용하는 합성수지)’ 국산화에 성공하며 비중을 늘렸다. 수익성이 높은 SAP(고흡습성수지), ABS도 10만t 증설했다. 마침 ABS와 PVC(폴리염화비닐)는 올 들어 마진이 각각 47%, 5% 상승해 LG화학의 지난 2분기 호실적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ABS는 중국 내 가전제품과 자동차 판매 증가에 따라 하반기에도 호시황이 기대된다.

▶롯데케미칼

▷대규모 설비 투자 집중…뚝심으로 승부

롯데케미칼은 올 1분기 8000억원이 넘는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내며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급부상했다. 특히 그룹 주력사인 롯데쇼핑을 비롯해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계열사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이슈로 줄줄이 실적 부진을 겪는 가운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롯데케미칼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4471억원으로 롯데그룹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기여도가 70%를 훌쩍 넘는다.

롯데케미칼은 3분기에도 어닝서프라이즈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1분기에 이어 영업이익 8000억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최대 석유화학단지를 강타하면서 올 하반기와 2018년 초 상업 가동이 예정됐던 미국 에탄분해설비와 폴리에틸렌 설비 일부의 가동이 늦춰져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허리케인 영향으로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스타이렌모노머(SM)와 모노에틸렌글리콜(MEG) 등 에틸렌 계열 제품의 가격 강세가 두드러진다. 적어도 2018년 초까지는 하비 효과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M은 합성수지·합성고무, MEG는 폴리에스테르의 원료로 롯데케미칼의 주력 화학제품이다.

깜짝 실적의 배경에는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본업인 석유화학 사업에 집중해온 롯데케미칼의 뚝심이 빛을 보는 것이란 평가가 많다. 롯데케미칼은 그동안 석유화학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원가를 낮춰 수익을 극대화하는 사업 전략을 써왔다. 연구개발(R&D) 비용은 2016년 기준 636억원으로 매출의 0.48%에 불과한 대신 설비 투자 금액이 크다. 지난 2010년 말레이시아 에틸렌 생산업체인 타이탄을 인수하는 데 1조5000억원을 투입했고, 2018년까지 미국 루이지애나에 에탄분해설비를 짓는 데 2조9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설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지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분야인데, 롯데케미칼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 새로운 사업에 한눈팔지 않고 잘하는 본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실적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약 3조원을 투자해 인수한 삼성SDI의 케미칼사업부문(롯데첨단소재)과 삼성정밀화학(롯데정밀화학)의 시너지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롯데첨단소재는 롯데케미칼로부터 ABS의 원료인 BD(부타디엔)와 SM의 원료인 DMC(디메틸카보네이트)를 공급받는다. BD의 경우 동북아 지역 수급이 불안정해 연간 두 배 이상 가격이 널뛰기하기도 했으나, 롯데케미칼과의 안정적인 공급계약을 통해 해외 진출 확대 등 판로를 넓혀 나가고 있다.

롯데케미칼-롯데첨단소재-롯데정밀화학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는 사업 안정성 강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시황을 잘 타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호황에는 크게 벌지만, 그만큼 불황에는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지는 리스크가 있다. 수익이 다시 줄어드는 시기에 실적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 주요 과제다. 롯데첨단소재와 롯데정밀화학 인수를 통한 사업 다각화와 ECC 공장 증설에 따른 원료 다변화 등은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매경이코노미

▶SK이노베이션

▷비정유 중심 사업 재편 ‘딥 체인지 2.0’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업계에서 큰 화두가 됐다. 분기 사상 세 번째로 1조원을 돌파한 데다, 화학·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 비중이 55%에 달했기 때문이다. 비정유 중심의 사업 다변화를 추진한 게 성과로 이어졌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 비중은 2015년 46%, 지난해 53%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분기에도 유가 하락으로 석유 사업 실적이 악화됐지만 비정유 부문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며 이를 상쇄했다.

여기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전 경영진이 추진한 ‘딥 체인지 2.0’ 전략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부터 화학·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과 배터리, 정보전자소재 등 신규 사업에 집중 투자하며 본격적인 사업구조 혁신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이 비정유 부문에 투자한 금액만 5조원에 육박한다. 꾸준한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자 시장도 화답했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최근 4개월 만에 20% 이상 급등했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로 하락하던 시기였음에도 ‘정유사 주가는 유가 등락에 따른다’는 속설을 역주행한 점이 눈에 띈다. 비정유 사업 강화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사업 다변화에 자체 역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추진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는 모두 세계 굴지의 메이저 기업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중국 시노펙(SINOPEC)과 중국 우한 현지에서 연간 약 250만t의 유화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프로젝트, 일본 JX에너지와 아로마틱 제품을 생산하는 울산 아로마틱스 운영이 대표적인 예다. SK종합화학은 자체 에틸렌 연간 생산 규모가 86만t으로 업계 5위 수준이지만, 시노펙과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에틸렌 생산량을 배 이상 늘릴 수 있었다. 이처럼 SK이노베이션은 적극적인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해 자사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글로벌 기업의 다양한 판매 네트워크와 막강한 자금력·기술력, 원활한 원료 공급력 등을 활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자회사 SK종합화학을 통해 다우케미칼 포장재 부문을 인수한 것도 사업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SK종합화학은 올 2월 다우케미칼로부터 에틸렌아크릴산사업(EAA, 치약·음료 등을 보관하는 튜브형 용기를 붙일 때 사용하는 기능성 접착수지)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 다우케미칼의 폴리염화비닐리덴(PVDC, 냉장·냉동 가공육 포장재 원료)사업부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종합화학이 종합 포장소재 전문 화학 기업의 진용을 갖춤으로써,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비정유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화됐다는 평가다.

이동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EAA는 높은 기술력과 공장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고, 소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가격이 범용 제품 대비 높으며 변동성이 낮다. 이번 다우케미칼의 EAA 설비 인수를 통해 기존 넥슬렌 제품과 고부가 포장재 사업에서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화케미칼·한화토탈

▷미래를 내다본 선제적 M&A

지난해 한화그룹 화학 계열사들은 한화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 한화토탈은 사상 최대인 1조464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그룹 역사상 최대 이익을 낸 계열사로 등극했다. 한화케미칼도 창사 이래 가장 많은 779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올 상반기에도 한화토탈(7956억원)과 한화케미칼(3150억원) 등 화학 계열사들은 한화그룹 전체 영업이익(2조857억원)의 53%를 책임졌다. 방산과 금융이 중심이던 한화그룹에서 화학 계열사들이 주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한화 화학 계열사들의 도약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적중한 결과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과감한 M&A(인수합병)와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 등 공격적인 경영을 전개한 역발상의 묘가 결실을 맺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석유화학 업황이 최악이던 지난 2014년 폴리우레탄의 원료인 TDI(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 제조업체 KPX화인케미칼을 인수했다. 누적 손실이 수천억원에다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투자였다. 일부 생산 라인의 가동을 멈출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시장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중국의 석탄화학 산업이 주춤하면서 2015년 t당 평균 1658달러 수준에 거래되던 TDI는 지난해 t당 평균 2310달러로 가격이 상승했고 올해는 지난달까지 t당 4000달러 이상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2014년 삼성으로부터 한화토탈을 인수한 것도 ‘신의 한 수’라 불린다. 인수 전 마지막 해(2014년) 삼성토탈의 성적표는 매출액 8조7913억원, 영업이익 1727억원, 순이익 970억원이었다. 덩치는 크지만 변변한 수익을 내지는 못하는 이른바 ‘돈 안 되는 회사’였다. 하지만 한화는 낮은 수익성의 원인이 막대한 설비 투자 때문이라는 점을 꿰뚫어 보고 전격적인 인수를 결정했다. 지난해 삼성토탈은 매출액 8조1853억원, 영업이익 1조4667억원, 순이익 1조701억원으로 인수 2년 만에 영업이익이 10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한화의 효자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한화토탈이 갖는 강점은 다양한 라인업이다. 지난해 한화토탈은 올레핀과 방향족 품목을 총 740만t 생산했다. 올레핀과 방향족 품목의 생산 비중은 각각 46.4%, 53.6%로 균형 잡힌 구성을 자랑한다. LG화학(80.3%), 롯데케미칼(74%) 등 올레핀 품목의 생산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경쟁사 대비 쏠림이 덜하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제품 종류가 다양하고 생산 비중이 고르게 분포된 경우 시황 변동에 따라 실적이 널뛰기하는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부가 특화 제품에 집중하는 한화케미칼의 전략도 눈에 띈다. EVA(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 CPVC(고부가 PVC), XLPE(초고압 전선용 복합수지) 등 범용 제품 대비 수익성이 좋고 진입장벽이 높은 고부가 특화 제품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VA 생산량(36만t)은 세계 2위 규모로 자리를 잡았고, XLPE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생산에 성공하며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들 고부가 제품은 고도의 기술력과 높은 투자 비용이 필요해 산업 진입장벽이 높지만, 한 번 생산라인을 구축하면 경기 변동에 따라 큰 가격 폭을 보이는 다른 석유화학 제품과 다르게 안정적인 실적을 낼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9호 (2017.10.18~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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