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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걸릴 때까지 불법파견’ 부르는 파견법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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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근로감독·진정 적발되도

시정명령 이행하면 처벌 면해

‘정규직’ 고용 명문규정 없어

불법 파견에도 사용자에 ‘칼자루’

“‘고용의무’ 대신 ‘고용의제’ 바꿔야”



한겨레

금속노조 인천지부 만도헬라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간접고용 철폐, 노조 할 권리 쟁취 간접고용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원청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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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직 노동자 전원을 사내도급으로 사용했던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만도헬라)가 불법파견 사실을 알고서도 스스로 시정하지 않은 것은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의 ‘맹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가 시정명령을 한다 하더라도 현행법에선 ‘고용형태’를 규정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회사 ‘처분’을 기다리며 불안에 빠지는 문제점도 발생한다.

현행 파견법은 불법파견 사용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지만 모두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불법파견으로 적발된 1306곳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곳은 115곳에 그친다. 907곳은 시정명령을 이행한 뒤 형사처벌을 면했다.

이는 고용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이 고소·고발이 아닌, 근로감독·진정으로 위법사항이 적발된 경우 사용자가 시정명령을 이행하면 내사종결한 뒤 형사입건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법을 위반해도 시정명령 이행에 따라 형사처벌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파견법의 처벌조항이 불법파견을 예방하기 위한 제재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견법은 불법파견을 저지른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할 의무를 부여할 뿐, 고용형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당사자들을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법원은 ‘직접고용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곧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여러차례 판결한 바 있지만, 이런 취지에 반해 시정명령 이행 때 ‘기간제’로 고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도헬라의 불법파견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시정명령에 이르게 한 전국금속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지회는 고용부의 시정명령 이후 300명이 넘던 조합원이 60명 대로 줄었다. 지회장 등 집행부 등이 대거 금속노조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김동용 지회장 직무대행은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 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를 유지하면 회사가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지만, 금속노조를 탈퇴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할 것’이라며 탈퇴서를 받았다”며 “회사쪽에서 직접고용 시정명령 이행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시정명령 불이행 뒤 소송 등 ‘다양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판정을 받은 것은 회사지만, 오히려 회사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파견법의 ‘고용의무’ 조항을 ‘고용의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용자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가 아니라 ‘직접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한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파견법과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이 사용자에게 ‘걸릴 때까지 불법파견으로 쓰다가, 걸리면 기간제로 고용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고용의제’로 개정될 경우 불법파견 노동자를 처음 사용한 시점부터 적발 시점까지 체불임금도 부담해야 해, ‘불법’에 따른 사용자의 위험부담이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위와 같은 이유에서 “불법파견·위장도급 판정 시 즉시 직접고용(고용의제) 제도화”를 공약하기도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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