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friday] 해물 육수×돼지고기 국물=폭발하는 감칠맛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농장 일꾼들과 먹던 라멘

조선일보

일본 교토 ‘혼케다이이치아사히’의 라멘. 일본의 길거리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진 라멘은 이제 세계인이 즐기는 음식이 됐다./정동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밤 10시를 넘었지만 줄은 짧아지지 않았다. 일본 교토역에서 8분 거리, 가로등이 넓은 간격으로 서 있고 달빛은 어두운 밤, 사람들은 음모를 꾸미듯 그 어두운 거리로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교토에서 첫째로 꼽힌다는 라멘집이 있었다. 직장 동료와 택시를 타고 온 이들, 가이드북을 든 관광객, 서로 손을 붙잡은 커플들이 라멘집 앞에 모였다. 이 집에서는 간장으로 간을 한 '쇼유 라멘'을 팔았다. 종업원들은 머리에 빨간 수건을 묶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 일했다.

오래 기다려 주방이 훤히 보이는 카운터 좌석에 앉았다. 날렵한 체구의 남자는 면을 삶고 그릇을 뜨거운 물에 데웠다. 간장 소스를 작은 국자로 퍼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은 뒤 면을 담았다. 낭비되는 동작이 없었다.

라멘이 나왔다. 파기름이 둥둥 떠 풍미를 더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굽지만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에서는 삶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돼지고기 차슈도 그릇을 삥 둘러가며 넉넉히 올려져 있었다.

산처럼 쌓인 파를 헤집고 면을 잡아 올렸다. 일본 남부 후쿠오카에서 먹던 하카다 라멘보다 면이 굵었다. 면과 함께 국물을 마셨다. 기름과 간장, 그리고 육수에서 뽑아낸 감칠맛이 뒤섞여 강한 맛을 만들어냈다. 나는 젓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6년 전 밤에도 그랬다. 한 방에 8명이 모여 살았다. 남호주의 주도(州都)인 애들레이드에서 차로 5시간이 걸리는 렌마크는 호주 오렌지 산업의 중심지였다. 나는 그곳의 일꾼이었다. 틈나는 대로 오렌지와 귤을 땄다. 호주 비자 연장을 위해서는 1차 산업에 종사해야 했다.

렌마크에 도착한 첫날, 방구석에 놓인 이층침대 아래에 누웠다. 다음 날 간단한 지시를 받은 뒤 고글을 쓰고 나뭇가지를 헤치고 오렌지를 땄다. 굵은 나뭇가지가 옷을 뚫고 찢었다. 팔에 무수한 상처가 생겼다. 몸은 지쳤지만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첫 주의 주말이 되었다.

"환영 파티는 해야죠?"

일꾼들을 통제하는 한국인 관리인이 운을 뗐다. 나와 일본인 요리사 다이스케가 중심에 섰다. 나는 샐러드를 만들고 갈비를 찌고 김치를 버무렸으며 고기를 구웠다. 일본인 팀은 치킨 미트볼, 스시, 돼지고기 샤부샤부 그리고 라멘을 준비했다. 라멘은 다이스케가 아닌 겐이란 남자애가 맡았다. 눈이 강아지처럼 둥글고 맑으며 쾌활했던 겐은 머리에 수건을 묶고 라멘 육수를 우렸다.

"잇츠 더블유(W) 수프.(It's W soup.)"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이를 훤히 드러내고 웃던 겐은 짧은 영어로 라멘을 설명했다. 밑에는 해물육수 깔고 그 위에 돼지고기 육수를 부었다고 했다. 그것을 일본에서는 'W수프'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해물에서 나온 글루타민산과 돼지뼈의 이노신산이 만나면 감칠맛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지는 효과가 난다. 입안에 감칠맛이 가득 들어차 폭발할 것만 같았다. 배고픔이란 본능이 아닌 미각이란 쾌락을 원동력 삼아 젓가락질을 했다.

"라멘 가게를 차리는 게 내 꿈이야." 라멘을 한 그릇 더 청해 먹던 나에게 겐은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그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1800년대 후반, 요코하마 거리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처음 만든 것이 그 역사의 시작으로 알려진 라멘은 일본인의 솔 푸드요, 세계인의 세련된 이국 음식이다. 이제 라멘은 뉴요커 식단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다. 뉴욕의 웬만한 푸드코트 어디를 가도 라멘집이 있고 검고 흰 사람들이 서툰 젓가락질을 하며 라멘을 먹는다.

그 원동력은 밀고 당기는 전통과 혁신의 대결이다. 오래된 라멘집들은 전통을 고수하며 시대를 이어가고 새롭게 문을 연 라멘집들은 실험적인 시도에 거리낌이 없다. 이름을 얻은 가게는 분점을 내거나 편의점에 인스턴트 라멘을 출시해 자본을 얻어 성공 사례를 만든다. 일본의 라멘은 여전히 젊고 그만큼 역동적이다.

나는 삿포로에 가서도 라멘을 먹었다. 밤이 깊었지만 그 집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면은 꼬불거렸고 된장을 풀어 묵직한 맛이 났다.

주방에는 주름이 없는 젊음이 서 있었다. 6년 전 라멘 가게를 차릴 것이라던 겐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만의 것을 이뤄냈을까? 자신의 땀에 당당한 어른이 되었을까?

■라멘트럭:
서울 상수역 옆 작은 골목에서 돼지고기와 닭 육수를 섞어 국물을 내어 라멘을 만드는 집이다. 국물의 염도와 진하기를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자리가 적어 줄을 서는 것이 보통이다. (02)336-8455

[정동현 셰프]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