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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만물상] 緣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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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금융감독원 인사철에 뒷말이 무성했다. 잘나가던 A국장을 겨냥해 "여당 실세와 6촌간이라 승진 0순위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A국장은 펄쩍 뛰었다. "집안에 물어보니 13대 조(祖)에서 갈라진 28촌지간이라고 하더라. 28촌도 친·인척이냐"고 했다. 그래도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분이 있으니 말이 났을 테고, 그런 연고(緣故)가 있으니 금감원장이 배려를 해줄 것 아니냐는 이심전심 때문이었다.

▶공무원 사회에 '출세하면 친척이 늘어난다'는 우스개가 있다. 누군가 한자리하면 음으로 양으로 덕을 볼까 해 접근하는 사람이 많은 걸 풍자한 말이다. 물론 관가(官街)에만 있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공채 과정에서 금감원 고위 임원, 전직 은행장, 병원 이사장 등의 자녀나 친·인척 16명 명단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원 8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강원랜드에선 2012년 하반기부터 1년 동안 채용한 신입 사원 518명의 95%(493명)가 청탁자라는 폭로가 나왔다. 숫자가 충격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 구 여권 측의 청탁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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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는 올 들어 2404억원을 K은행에 집중 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예금(7657억원)의 3분의 1에 달한다. 마사회는 "K은행의 금리가 높아서 예치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개운치 않다. 지난 9월 K은행 지주사 회장에 정치권과 연줄이 있는 사람이 선임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마사회의 K은행 예치금은 2015년 715억원이었다가 지난해 540억원으로 줄었는데, 올해는 4배 이상 늘어났다.

▶경기도교육청이 2015년부터 올해까지 3년 내리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텍 언어교육원과 교사 연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국감에서 드러났다. 경기도는 매년 초·중·고교 교사 30여 명에게 4주 안팎 해외 연수를 시킨다. 2014년까지는 연수지 선정을 외부 기관에 위탁했는데, 이재정 교육감 취임 이듬해인 2015년부터 달라졌다. 교육청이 직접 정하면서 조지아텍 언어교육원이 붙박이 연수지가 됐다. 이 교육감 딸(40)이 2008년부터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야당은 "별처럼 많은 해외 언어교육원 중에서 유독 조지아텍과 계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사람들이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서 출세한 사람, 힘있는 사람을 찾는 데는 까닭이 있다. 능력보다 줄 서기, 줄 타기를 앞세우는 연고주의(緣故主義) 탓이다. 그 결과 국민 70%가 한국을 불공정 사회라고 느끼고 있다. 줄을 끊어 낼 때도 됐는데 어째 더 질겨지는 것 같다.

[이진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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