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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사설] 철원병사 부친과 구본무 회장, `배려가 배려를 부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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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사격장 근처를 지나다 총탄에 맞아 숨진 철원 육군 6사단 이 모 상병의 사망 원인이 당초 군당국이 추정한 도비탄(튕겨져 나온 총알)이 아니라 유탄으로 최종 밝혀진 것은 충격적이었다. 군 당국의 안일한 대응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상병의 아버지는 의연했다. 그는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 병사가 밝혀지더라도 나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 군대에 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겠지만 총을 쏜 병사의 자책감과 부담감을 헤아린 아버지의 차분한 행동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이런 이 상병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사재 1억원을 전달한 소식 역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구 회장은 "병사 아버지의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곱씹어 볼 메시지다. LG그룹은 2015년 의인상을 제정하고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해양경찰, 군인, 소방관, 굴착기 기사 등 숨은 의인들을 찾아내 상금을 전달해 왔다. 의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보답하는 일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특히 탄환을 쏜 병사를 추적하지 말라고 했던 이 병사 아버지의 배려에 구 회장이 배려심을 보인 것은 '배려가 배려를 부르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사랑, 배려, 온정보다 탐욕 , 복수, 응징, 이기심이 판치면서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적대시하고, 뜻대로 안 되면 떼법 쓰기와 억지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구 회장이 유가족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은 각박한 사회가 변하게 하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배려는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의로운 일을 한 이들이 존중받고 이런 분위기가 다시 의인을 만드는 선순환 사회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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