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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세상 읽기] 전쟁과 평화의 생명윤리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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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1991년 걸프 전쟁, 1월18일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향해 처음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날 이스라엘 전국에서 평소보다 58%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미사일이 목표로 삼았던 텔아비브와 하이파의 사망률은 80%나 더 높았다. 막상 미사일은 사람에 닿지도 못했으니, 보건 전문가들은 공포와 스트레스가 그 많은 죽음의 원인이라 추정했다.

전쟁과 죽음은 이렇게도 마주치지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수단 같은 곳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피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2000년대 초반 이라크 전쟁에서 많게는 60만 명이 사망했고, 2013년부터 벌어진 남수단 내전은 최대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6년 이상 계속된 전쟁으로 시리아 국민의 평균수명은 20년 이상 짧아졌다.

엄청난 규모뿐 아니라 사상자를 차별하는 것이 전쟁 피해의 숨은 특징이다. 현대전에서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고 다친다. 유니세프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는 민간인이 전체 사망자의 34%였지만 1990년대 이후는 90% 이상을 차지한다. 어린이, 가난한 사람, 장애인, 노인,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것도 당연지사.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이라크 전쟁 때문에 2만5천 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졌다.

이 땅의 전쟁인들 다를까. 생명 파괴와 불평등을 피할 도리가 없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추정한 결과로는 전쟁이 시작되면 몇 시간 안에 3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죽는다고 한다. 핵전쟁도 아닌 재래식 무기만으로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수도권만 수백만 명 사망자가 발생한다니,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당면한 현실이다.

생명과 건강을 말하던 사람들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무력하고 우울하다. 단박에 사망자만 몇백 만에 이를 수 있다는데, 예방이나 건강 증진이 이 무슨 한가한 소리인가. ‘문재인 케어’와 ‘치매 국가책임제’도 전쟁 앞에서는 가소로운 몸부림일 뿐이다. 전쟁이 생명과 건강을 ‘무’(無)로 돌릴 때, 어떤 보건과 의료도 완전히 무력하다.

전쟁 때만 문제가 아니다. 생활환경 악화, 영양 결핍, 의료시설과 인력 부족 등 평범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조건이 수십 년 지속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전쟁 이후 그 많은 사람이 겪은 고통과 참상을 생각해보라. 이라크에서는 걸프전 종전 이후(!) 다섯 살이 안 되는 애들의 사망률이 전쟁 전보다 세 배나 늘었다.

보건 쪽 일을 하는 사람이 전쟁까지, ‘오버’한다고 하지 말라. 전쟁이 죽고 다치거나 아픈 문제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면, 건강과 생명을 다루고 고민하는 그 누구나 긴박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에 책임이 있다. 1981년 세계보건기구 전체 회원국이 채택한 결의문은 이렇다.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의사와 보건 전문가가 평화를 지키고 증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레비와 사이델이라는 학자가 같이 펴낸 <전쟁과 보건>이라는 책은 보건 전문가가 전쟁을 막기 위해 할 일들을 이렇게 제안한다. (1) 전쟁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전쟁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기록하자, (2) 전쟁이 초래하는 영향을 교육하자, (3) 전쟁을 예방하는 사업과 정책을 지지하고 지원하자, (4) 전쟁을 막는 일에 직접 참여하자.

어디 건강과 보건뿐이고 전문가만 할 일일까. 삶과 사회의 본질적 가치가 중요하면, 그리고 그것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면, 모두 한목소리로 외치자. 이 땅에서 전쟁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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