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30 (목)

[장윤옥의 창]데이터 관리와 1루수 찾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언제 봐도 재미있는 동영상이 하나 있다. 어릴 적에는 뚱뚱이와 홀쭉이로만 알고 있었던 듀오 개그맨, 버드 애벗과 루 코스텔로가 만든 만담인데 우리나라에도 ‘1루수가 누구야’란 제목으로 꽤 유명하다.

이 영상에서 두 사람은 야구팀 1루수의 이름을 알려주기 위해 계속 대화하는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대화는 전혀 진전이 없다. 야구선수들이 누구(Who) 뭐(What) 왜(Why)처럼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어나 중국어 같은 외국어라면 아예 말이 안 통한다고 포기하겠지만 분명히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니 답답할 노릇. 두 사람은 서로 가슴을 치지만 선수이름을 각자 다르게 사용하고 있음을 아는 관중은 배꼽을 잡는 것이다.

최근 혁신성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기존 산업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기술로 무장, 시장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는 기업과 그 산업을 키우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혁신성장이 새 정부의 핵심 전략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혁신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장려하고 이를 지원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상품과 서비스, 또 기업 시스템이 혁신적일수록 어느 정도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전까지는 이상하고 쓸모 없다는 취급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은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도 수많은 회사의 실패 끝에 탄생했고 애플이나 삼성 제품마저 처음에는 회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단 시장에서 자리를 잡자 수많은 연관 비즈니스와 기업을 만들어냈다.

혁신성장은 또 기존 시장과 시스템의 포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의 부상은 가솔린차의 몰락을 예고했고 모바일 금융의 확산은 은행 창구의 역할을 바꾸고 ATM(자동현금입출금기)산업에 타격을 줬다.

결국 혁신성장의 성공은 이 같은 변화에 얼마나 민첩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판가름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나 시스템은 기술의 변화만큼 빠르게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종종 체격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옷이라면 빨리 갈아입으면 그만이겠지만 같은 사안을 놓고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영상에서 1루수 이름을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데이터에 대한 생각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 활용이 중요하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지만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에도 공감을 표한다.

데이터의 특징을 각기 다른 면에서 강조한 것인데도 말이다. 흩어져 있는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면 그 데이터의 특징을 찾아 패턴을 읽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각 개인의 특징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데이터 중에는 사람들이 프라이버시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면 데이터의 민감도나 오용가능성을 꼼꼼히 체크해 규칙과 제재방안을 만들되 이를 기반으로 기업이 혁신을 이뤄내는 것을 막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초연결과 인공지능 시대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끝없이 1루수를 찾는 일은 그만두고 데이터 활용을 위한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코미디언처럼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활용 같은 말만 되풀이해서는 혁신성장은 또 하나의 말잔치가 되고 말 것이다.

장윤옥 테크M 편집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