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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정영두의 내 인생의 책] ②노란 우산 | 류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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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넘어선 ‘몸’부림

경향신문

어느 날 문득, 연극무대에서 이런 질문이 찾아왔다. 대사와 잘 어울리는 몸은 어떤 것일까, 몸과 말이 조화를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용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는 ‘말’을 넘어서고자 ‘몸’부림을 쳤다. 둘은 안과 밖을 분리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았다. 이렇게 몸과 말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노란 우산>을 만났다.

“그림책이란 말 그대로 그림이 중심이다. 활자는 도와주는 것이다. <노란 우산>은 글자도 없지만 줄거리도 없다. 그냥 조형만으로 이뤄져 있다. <노란 우산>에 담고자 했던 그 무엇은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우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색깔들의 조화 그 자체를 추구한 것이다.”(류재수, 한겨레신문 2002년 인터뷰 중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 안에는 음악(신동일 작곡) CD도 들어 있었다. 그림책은 노란 우산을 쓴 아이를 시작으로 다리, 놀이터, 공원 등을 지나며, 색색의 우산을 쓴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 학교에 등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설명도 사건도 없다. 교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서 노란 우산을 따라가면 충분하다.

정치인들부터 시작해 매일 폭포처럼 쏟아지는 말들로 속고 속이는 이때, <노란 우산>은 말없이 많은 말을 한다. 의미를 비움으로써 의미를 담아낸다. 힘의 흐름과 중심이 잘 잡힌 조형들을 볼 때면 난 황홀하다. 바람을 타고 노는 나뭇잎이나 물결을 받아내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은 말을 통해 얻은 깨달음보다 훨씬 더 선명한 깨달음을 준다. 이것이 내가 춤을 추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어느 날, 우연하게도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예술캠프에서 류재수 선생님과 나는 미술과 무용 강사로 만났다. 그때부터 1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비오는 날, 노란 우산을 보게 되면 기분이 참 좋다.

<정영두 |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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