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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트렌드+] 저장된 사진은 데이터일 뿐… '꺼내보는 사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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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즉석사진에 빠진 디지털세대

스티커사진 이후 20년만에 열풍… 서울 번화가에 부스만 400여개

이달 초 2호선 강남역 부근의 한 즉석사진 부스. 'PHOTOS'라 적힌 작은 LED 간판에 불이 켜지고, 붉은색 암막 커튼 뒤에선 플래시가 팡팡 터졌다. 부스 옆으로는 대기 줄이 20m쯤 늘어섰다. 스물두 살 동갑내기인 대학생 서혜린·김주아씨는 손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정리하고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몇 분 후 부스 밖 출력구에서 두 사람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담긴 흑백 즉석사진이 인화됐다. 서씨는 "증명사진 빼고는 이렇게 출력된 사진을 손에 잡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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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한 즉석사진 부스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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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 골목은 지금 '즉석사진 부스' 천지다. 1990년대 후반 스티커사진 열풍이 불어 수많은 스티커사진 기계가 우후죽순 거리를 차지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포토그레이' '인생네컷' '모노인스타' 등 즉석사진이 비슷한 인기를 끌고 있다. 홍대·신촌·건대입구 등 서울 시내에만 400개 넘는 부스가 생겼다.

사진인화 안 해본 젊은 층 열광

즉석사진은 사진 출력을 안 해본 젊은 세대에게 인기다. 사진을 디지털 기기 화면으로만 소비하던 이들은 '손으로 만지는 사진'에 열광한다. 스티커사진의 추억을 가진 이들도 다시 찾아온 즉석사진의 인기를 반긴다. 2호선 신촌역에서 연인과 '포토그레이'를 찍은 은빛나라(28)씨는 "중·고교 시절 친구들과 스티커사진을 찍으면 작게 잘라 지갑에 넣고 다녔다. 수천 장 스마트폰 사진앨범 속 사진과는 다른 '꺼내보는 사진'의 묘미가 즉석사진에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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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데이터’로 인식하는 시대에 즉석사진은‘꺼내보는 사진’의 추억을 소환한다. 최근 은빛나라씨 커플이 찍은 흑백 즉석사진. /은빛나라씨 제공


이 즉석사진들은 컬러와 흑백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흑백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화된 사진만이 가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컬러보다는 흑백이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촬영부터 출력까지는 3분이면 끝난다. 요금은 3000원. 현금이나 신용카드, 티머니 교통카드로 결제한다. 블랙과 화이트 중 배경색을 택하고, 10초 간격으로 연달아 4장을 찍는다. 20초만 기다리면 이 사진들을 세로로 이어 붙인 출력본이 나온다. 1컷의 크기는 대략 5㎝×4㎝. 눈 키우고 볼살 줄이는 '보정'은 없지만, 사람들은 스냅사진 같은 자연스러움에서 신선함을 느낀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들어가는 즉석사진

즉석사진을 소비하는 젊은 세대는 20년 전과 달라졌다. 무엇이든 인증하고 공유하기 좋아하는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사진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최종 소비한다. 아이러니다. 인화사진이 주는 이채로움에 끌려 촬영을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포토그레이' '#인생네컷' 같은 해시태그(검색이 용이하도록 단어 앞에 #을 붙이는 방식)를 검색하면 이 같은 '사진을 찍은 사진'이 10만 개 넘게 쏟아진다. 고교생 김민지(18)양은 "인스타그램을 장식한 즉석사진은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실물 사진을 꺼내보는 횟수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더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대마다 즉석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성이 다르다고 말한다. 사진가 정민호(28)씨는 "보정이 일상화된 스마트폰 카메라앱 세대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즉석사진에서 오히려 특별함을 느낀다"면서 "어릴 적 스티커사진을 추억하는 이들에겐 복고(復古)의 성격도 띤다"고 말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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