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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시선]이승엽,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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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충남 당진까지 5시간 걸렸다. 한나절 걸려 아버지 뵙고 저녁 먹고, 자고 일어나 아침 먹고 다시 한나절 운전해 서울에 왔다. 부산, 대구, 광주, 땅끝 해남까지 간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급한 용변을 해결하거나 차에서 내려 운전을 교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게 도착한 당진 집에서 정말 특별한 장면을 지켜보았다. TV를 통해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은퇴경기를 본 것이다. ‘베이스볼 키드’였던 내게는 더없이 허전해지는 순간이었다. 2005년 ‘연습생 신화’ 장종훈의 은퇴식을 보러 대전에 갔을 때, 2012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을 보기 위해 광주에 갔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다. 이종범이 은퇴를 발표하던 날에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집에 기어서 들어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다. 이르면 3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나기도 하니 한 해의 절반이 넘는 날들 동안 야구를 본다. 선발투수는 닷새마다 한번 마운드에 오르지만 타자는 매일 경기에 출장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뛸 때도 국내 방송으로 중계가 되었으니, 야구팬들은 23년 동안 거의 매일 이승엽을 본 것이다. 그래서 프로야구 선수는 어쩌면 가족보다 더 얼굴을 자주 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쾌감을 느끼고, 용기와 위로, 희망을 얻기도 하며, 또 때로는 실망하기도 한다. 그 세월이 10년, 15년, 20년 쌓이고 마침내 작별하게 될 때 선수와 팬 모두 만감이 교차한다.

전설의 홈런 타자는 마지막 경기에서마저 홈런을 쳤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연타석으로.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가 “우리는 이 선수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라고 자꾸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해내는 게 영웅이라면, 베이징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2년 한국시리즈 등 극적인 순간마다 홈런을 친 이승엽은 야구 영웅이다. 홈런을 치면 상대 투수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베이스를 도는 여린 심성과, 홈런을 치고도 경기장에 남아 스윙 연습을 하는 지독한 근성이 조화를 이룬 결과가 프로 통산 626개의 홈런과 ‘국민타자’라는 칭호다.

이승엽은 홈에서 출발해 1루, 2루,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왔다. 한 번 더 홈을 떠나 굴곡진 베이스를 돌고 뾰족한 지붕과 집채 모양의 홈플레이트로 다시 돌아왔다. 야구 경기는 종종 인생에 비유되곤 하는데, 그의 연타석 홈런은 험난한 바깥 들판(野)에서 23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재차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은퇴식 내내 눈시울이 촉촉하게 빛나던 그가 유독 많은 눈물을 쏟아낸 순간은 삼성라이온즈 구단으로부터 ‘이승엽 재단’에 1억원의 출연금을 전달받던 때다. 야구를 통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유소년 야구선수들을 비롯한 사회 취약계층에 돌려줄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감격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 순간, 가족들의 영상편지가 전광판에 나올 때, 2007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보며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었다. 그러곤 벌게진 눈으로 야구장 펜스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본에서 활약할 때,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는 홈에 들어오며 “엄마”라고 외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승엽에게 626개의 홈런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626번의 여정이었다. 추석 연휴,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집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명절에도 생활이 고되어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저녁 하늘의 종이비행기처럼 날아간 그의 홈런은 위로가 되었다.

23년간 그가 준 모든 감명에 감사한다. 이승엽, “home run.” 이제 따뜻한 집으로 가 편히 쉬기를.

<이병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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