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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부리고래 ‘2시간·3000미터 잠수’ 비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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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포유류 최고 기록…“먹이 경쟁 없고 잡기도 쉬워”

몸집 작지만 산소 고갈되면 무산소호흡으로 버텨

수면 돌아와 1시간 이상 휴식…해군 소나 피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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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비로운 고래로 꼽히는 민부리고래. 가장 깊이 가장 오래 잠수하는 고래로 알려져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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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파로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 동물 가운데 깊은 바다를 잠수해 먹이를 찾는 종이 여럿 있다. 코끼리물범, 바다사자, 물개 같은 포유류와 황제펭귄, 장수거북 등이 그런 예다. 그렇지만 ‘잠수의 선수’는 고래이다. 특히 깊은 바다에 내려가 먹이를 사냥하는 이빨고래는 놀라운 잠수 능력을 보인다. 향고래는 바닷속 2250m까지 잠수해 90분 동안 심해 오징어를 사냥한 기록이 있다.

얼음처럼 차갑고 캄캄한 데다 허파가 완전히 쪼그라들 정도로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 고래가 어떻게 사냥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동안 밝혀진 비결은 이렇다.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 같은 단백질이 혈액과 근육에 다량 분포해 산소를 많이 저장한다. 또 흉곽을 유연하게 조절해 수압에 눌린 허파에서 질소가 혈관으로 녹아드는 것을 막는다. 나아가 심장 박동수를 줄이고 뇌와 심장 등 꼭 필요한 곳에만 산소를 보내 산소 소비를 억제한다.

덩치가 큰 고래일수록 심해 잠수 능력이 뛰어나다. 몸속에 보관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길이 20m에 무게 57t까지 나가는 향고래보다 심해 잠수를 잘하는 고래가 있다. 무게가 1∼2t에 지나지 않는 소형 고래인 부리고래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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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덜 알려진 고래 가운데 하나인 혹부리고래. 10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다. 미 해양대기국(NO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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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민부리고래는 가장 신비로운 고래로 꼽힌다. 깊은 바다에 사는 데다 보트의 접근을 꺼려 좀처럼 연구하기 힘들다. 무언가의 이유로 죽어 해안에 떠밀려 오기 전에도 보기조차 어려운 고래여서 생태에 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이 고래는 포유동물 가운데 가장 깊이 잠수하고 가장 오래 머문 기록을 세웠다. 미국 연구자들이 2014년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남부 캘리포니아의 민부리고래 8마리에 위성추적 장치를 부착해 조사한 결과 한 마리는 수심 2992m까지 내려갔고, 다른 한 마리는 2시간 18분 동안이나 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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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로 바다표면을 때리는 민부리고래. 이들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는 1시간 이상 심해를 잠수해 먹이를 사냥해 돌아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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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고래는 대개 수심 1000m 이하에서 먹이를 찾는다. 이처럼 깊이 잠수하면서 부리고래는 어떤 생리적 변화를 겪을까. 또 대체 왜 이렇게 깊이 잠수하는 걸까. 위성추적 장치 등 야생동물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조사기법이 발달하면서 그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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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고래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한 추적장치가 부착된 모습. 미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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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티애크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민부리고래와 혹부리고래 등 부리고래 10마리에 음파와 방향을 기록하는 표지를 부착해 연구한 결과를 2006년 과학저널 <실험생물학저널>에 발표했다. 부리고래는 주둥이가 새의 부리를 닮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패인 홈에 집어넣고 심해를 향해 유선형 몸매를 날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뢰이다. 빠른 속도로 잠수한 부리고래는 이제 산소 부족과 싸움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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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부리고래는 유선형 체형에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움푹 패인 곳에 집어넣으면 어뢰 같은 모습이 된다. 미 해양대기국(NO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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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숨을 들이마신 부리고래는 다음번 숨을 들이쉴 수 있을 때까지 대개 1시간∼1시간 반 동안 잠수와 사냥, 수면으로의 복귀를 마친다. 이 기간에 산소 부족을 이기는 것이 관건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들이마신 공기 속의 산소를 모두 써버리고 산소 대신 몸속에 비축된 물질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른바 혐기성 호흡이다. 그 부산물로 몸속에 젖산이 쌓이기 시작한다. 대개의 해양동물은 이 한계에 이르기 전에 수면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리고래는 한계 시간의 2배를 물속에서 보낸다. 펭귄, 바다사자 등 몸집이 작은 다른 해양동물도 부리고래처럼 한계를 넘는 잠수 행동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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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부리 모양을 닮은 부리고래의 주둥이. 바하마 해양포유류 연구기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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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하강하던 부리고래는 수심 400∼500m에 이르자 반사되는 음파로부터 목표물의 위치와 거리를 알아내는 특유의 소리를 냈다(반향정위). 사냥감을 추적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민부리고래는 평균 수심 1070m까지 내려가 사냥한 다음 수면에 돌아오기까지 평균 58분이 걸렸다. 부리고래는 심해에서 주로 심해 오징어나 바다 바닥에 사는 물고기, 갑각류 등을 주둥이로 빨아들여 사냥한다.

연구자들은 부리고래가 심해 잠수에서 돌아온 뒤 다시 심해 잠수에 나서기까지 간격이 유독 긴 데 주목했다. 그 간격이 향고래는 9분 정도였지만 부리고래는 1시간∼1시간 반에 이르렀다. 연구자들은 “몸에 축적된 젖산이 분해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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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부리고래의 잠수 깊이 변화. 심해 잠수를 마친 뒤 부상해서는 1시간 이상 휴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레버 조이스 외(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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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부리고래는 왜 젖산이 쌓이는 고통을 무릅쓰고 심해로 사냥을 가는 걸까. 트레버 조이스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플로스 원’ 12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심해의 생태계가 풍부하지 않지만 먹이 동물이 정주성이어서 잡기가 쉽고 경쟁자가 적은 환경이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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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미소짓는 것처럼 보이는 혹부리고래의 얼굴. 그러나 선박과 해상 군사훈련의 일차 피해자이기도 하다. 매튜 그라매티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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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리고래는 무슨 특별한 초능력이 있어 심해 잠수를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신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한계상황에서 인위적 교란이 가해지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부리고래는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잠수에 할애하고 있는데 해군의 음파탐지기나 선박의 엔진 소음이 정상적인 잠수 행동을 방해한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리고래는 미군의 해상훈련 때 해변에 좌초한 사건이 잇따라 주목되어 온 고래이다. 이들 고래는 사람의 감압 병과 비슷하게 혈관이 가스나 지방조각으로 막혀 죽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ter L. Tyack et al, (2006) Extreme diving of beaked whales, 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9, 4238-4253 doi:10.1242/jeb.02505

Joyce TW, Durban JW, Claridge DE, Dunn CA, Fearnbach H, Parsons KM, et al. (2017) Physiological, morphological, and ecological tradeoffs influence vertical habitat use of deepdiving toothed-whales in the Bahamas. PLoS ONE 12(10): e0185113.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851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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