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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앉기 위한 기계로 불린 혁명적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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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와 함께한 나무는 가구 재료로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특유의 친근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목가구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음 세대에 대물림할 만큼 정이 든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와 함께 목가구가 우리 삶의 안식처로 자리잡기까지 거쳐온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정은미의 木가구 에피소드] ① 기하학에서 찾은 목가구 디자인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 디자인계 화두는 이전 시대의 조악하고 과장된 가구 양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본과의 교류로 도입된 다양한 일본 문화 콘텐츠도 이런 흐름에 자극이 됐다.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에서 새로운 미(美)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기하학적 간결함-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근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자연에서 따온 그의 건축 모티프는 ‘기하학적 간결함’이다. 1905년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 전통 건축에서 받은 영감도 그 일부가 됐다. 그는 아무런 장식없이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는 선이나 담백한 외형, 주변 자연 환경과의 동화를 꾀했다. 뿐만 아니라 사각형을 비롯해 삼각형·육각형·원형·나선형 등 기하학 형태를 평면과 입체적인 조형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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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 마크 에스테스(Mark Est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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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중 하나가 걸작으로 불리는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간결한 원형 외관과 나선형 경사로가 특징이다.

그는 가구에도 기하학적 요소를 시도했다. 특히 반복되는 직선의 면분할은 그가 만든 가구와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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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배럴 의자를 이탈리아 가구 업체 카시나(Cassina)가 재생산했다. /카시나(Cassina)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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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Barrel)의자는 그가 1905년 다윈R.마틴 가족의 서재를 위해 디자인했다. 원형의 좌석과 반원형 등받이에 막대기가 수직으로 배열돼 편안하고 독특한 인상을 준다. 팔걸이의 모서리를 곡선으로 둥글게 만들고 등받이 끝을 바깥쪽으로 살짝 구부린 섬세함이 아름답다.

현재에도 ‘이 마에스트리(I Maestri)’ 컬렉션을 통해 거장들의 작품을 재현하고 있는 세계적인 이탈리아 가구 업체 카시나(Cassina)는 1937년 배럴 의자의 초기 디자인을 변형해 재생산했다. 원래는 팔걸이 부분이 언덕처럼 볼록하게 솟은 형태였고 좌판 쿠션은 좀 더 납작했다.

■직선에서 발견한 우아함-찰스 매킨토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사조의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식물 줄기를 가구에 자유로운 곡선으로 표현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 학파(Glasgow School)의 특성을 대표하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는 아르누보 양식을 바탕으로 추상화된 곡선형 가구와 일본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을 결합해 완전히 독창적 스타일의 기하학적 형태를 완성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사다리 의자(Ladder Back Chair)’. 출판업자 월터 블래키의 주택 ‘힐 하우스’ 의 전체 디자인을 의뢰받은 그는 실내 장식 일부로 의자를 만들었다. 수직적인 형태와 기하학적 구조가 돋보인다. 참나무 뼈대에 에보니블랙으로 착색해 강렬한 카리스마가 풍기는 이 의자로 그는 가구의 역할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앉는 도구나 실내 장식 요소로만 여겨지던 의자를 조각과 같은 예술 작품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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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사다리의자. /카시나(Cassina)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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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나는 사다리 의자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세심한 스케치를 근거로 ‘D.S.1’ 테이블도 재구성했다. 테이블 다리의 격자구조가 만들어 내는 패턴은 시각적인 흥미를 자아내고 있으며, 한편으로 일본 건축의 영향도 느껴진다. 접이식 구조로 이뤄져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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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1 테이블. 카시나가 제작했다./카시나(Cassin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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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과 일체화된 디자인-요제프 호프만

매킨토시의 기하학적인 디자인 경향은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전위적인 예술단체인 비엔나 분리파( Wiener Secession) 의 예술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줬다. 그들은 아르누보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모티프를 도입했다.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은 매킨토시가 즐겨 사용한 격자 패턴과 원, 가느다란 직선 등의 조형 요소를 자신의 목가구 디자인에 적용했다. 그는 정사각형과 입방체를 즐겨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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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호프만의 지츠마신 안락의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제공 ⓒPhotography by Thomas 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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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호프만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처 요양원 설계를 맡았다. 당시 환자들이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안락의자를 제작했다. 이 의자가 바로 ‘앉기 위한 기계’라고 불리는 ‘지츠마신(Sitzmaschine)’이다. 사각형 구멍이 뚫린 판에 합판을 구부려 만든 프레임 구조가 의자의 전체적인 뼈대와 등받이를 형성했다. 반원형의 팔걸이에서 연결되는 다리 뒷면에는 둥근 볼이 부착됐다. 이 볼은 호프만 특유의 장식 요소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기능적인 역할이 더 크다. 등받이의 각도를 달리할 때 등받이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막대기가 볼 사이에서 각도를 고정시켜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마호가니 색상으로 착색해 가벼움을 덜어냈다.

훗날 ‘No. 670’으로 불리게 된 지츠마신은 1908년 비엔나 예술전시회에 처음 전시됐다. 가구 업체 대표인 야콥 & 요제프 콘이 상류층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당시 전위적인 건축가 호프만과 그의 동료였던 구스타브 시겔 등을 영입해 이뤄낸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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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 상명대학교 겸임교수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는 상명대에서 목공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목조형 작품인 얼레빗 벤치 ‘여인의 향기’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됐다. ‘정은미의 목조형 가구여행기’와 ‘나무로 쓰는 가구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상명대 겸임교수이며 리빙오브제(LIVING OBJET)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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