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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기업 부패 뿌리 뽑자 ‘민간 김영란법’ 제안 현대판 암행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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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기업부정방지연구소장

중앙일보

기업 부정 조사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박종구 전 감사위원. 감사원의 상징인 ‘마패’와 기업 부정 사례와 예방법을 엮은 자신의 저서를 함께 들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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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출두요!” 박종구 기업부정방지연구소장은 일평생 스스로 이렇게 외치며 살아왔다. 26년간 감사원에서 근무하고 감사위원(차관급)으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부정부패와 비리 공직자를 걸러내는 게 그의 주된 임무였다.

행담도 비리(2004년)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마패’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1998년 현장 반장 시절 외환위기 감사를 진행하며 당시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수석 등을 직접 조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퇴임 후엔 기업 고문과 같은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3년째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 바로 기업의 부정부패를 막고 감시하는 일이다. 자비를 털어 미국과 영국·일본 등 선진국을 다니며 민간 부정부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지난달엔 국내외 수백 개 사례를 분석해 기업부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책으로 엮었다.

“국내 기업들이 부정으로 손해 본 금액을 추산하면 연간 77조 원에 달합니다. 민간 부패와 비리는 공공 부문보다 훨씬 크고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박 소장은 “기업의 부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그가 제안하는 것은 ‘민간 김영란법’ 제정이다. 미국의 ACFE(Association of Certified Fraud Examiners)처럼 공인부정조사사 제도를 도입하고 회계부정 등 부패를 저지른 기업은 강력히 처벌토록 근거 법령을 마련하는 것이다.

박 소장은 “대우조산해양의 분식회계로 수조원의 피해를 봤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며 “미국 같았으면 경영자는 25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해당 기업과 회계법인은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 파산한 엔론의 감사를 맡았던 아서앤더슨은 100년의 전통을 가진 글로벌 ‘빅5’에 드는 컨설팅사였지만 부정을 방조한 책임을 물어 해체됐다.

박 소장은 ‘민간 김영란법’ 제정을 위해 지난 10일 ‘기업부정방지협회’라는 공익법인을 설립했다. 협회에서는 기업들에 부정방지 교육, 부패 사례 연구, 경영 투명화 컨설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협회의 활동은 대부분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부정조사사 도입을 위해 미국 ACFE와 지난해부터 긴밀한 논의를 해왔다. 박 소장은 “영국엔 부정조사사가 8만 명 정도 있다”며 “일본도 최근에 부정조사사 제도를 법제화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부정을 통해 입는 손실만 막아도 순익이 크게 늘어난다”며 “경영자들의 인식 개선 운동을 통해 민간 부문의 부정부패를 근절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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